Home / Edu & Society / 교육 / 북유럽을 통해 달라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의 모습과 생각 <5> 닮은 우리가족, 그러나 각자의 생각과 자유의지는 다르다.

북유럽을 통해 달라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의 모습과 생각 <5> 닮은 우리가족, 그러나 각자의 생각과 자유의지는 다르다.

Photo by Carolina Romare / imagebank.sweden.se

사랑하는 두 남녀가 만나서 함께 하고 싶은 미래를 계획하며 결혼을 한다.  아직까지는 미혼 남녀의 결혼 전 동거를 편안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한국에서는 결혼은 ‘인륜지대사’라고 불릴 만큼 인생의 여러 결정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고 큰 전환점이 되는 인생의 큰 ‘사건’이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큰 결정을 내린 두 남녀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더 큰 가족 구성원을 이루게 되더라도 모든 가족생활과 주도권을 갖고 있는 주체이자 결정권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과의 대화와 타협보다는 커다란 자신들의 계획과 흐름대로 아이들을 주도하고 이끄는 모습이다.  결혼의 시작, 그리고  아이를 갖고 가정을 이루면서 가족 안에서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결국 한국의 여러 가지 가족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한국의 부모들에게 수평적인 가족관계,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존중하는 ‘평등’은 그리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부모인 나로 인해 세상의 존재가 되었다는 아이들에 대한 우월감과 잘못된 책임감은 늘 강요와 일방적 소통의 가정 교육을 만들어 낸다.  어떤 한편에서는 ‘배려와 존중’을 잘못 이해하고 아이들 중심의 ‘희생적인’ 부모의 삶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모의 희생도 아이들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부모들의 ‘자기만족’이 숨겨진 의도일 때가 많다.

북유럽에서는 개개인을 존중하고 내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자유로운 평등사상이 뿌리내려져 있었다.  서로 다른 모습뿐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것, 각자가 보여주는 능력과 생각 등 모든 것이 존중되고 인정되는 사회였다.  어찌 보면 전혀 서로에게 상관 안 하는 나만의 삶에 몰두하는 모습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종과 민족이 섞여있고 그 안에서 최고의 자유를 보여준다는 미국에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모든 편견과 기준을 버린 평등의 사회였다.  혼자 상대방을 눈치 보고 의심하고 내려보고 평가하고 짐작하는 나 자신이 정말 황당하고 한심해지는 북유럽 사회였다.  그런 혼돈 속에서 나를 ‘평등’이란 의미를 새롭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 생각의 변화는 ‘모두 다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에 북유럽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건 흥미로운 일이고, 다시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로 생각한다.  사소한 나의 제안이나 질문도 쉽게 넘겨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괜히 물어봤나’ 싶을 정도로 가끔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상점이나 서비스센터의 ‘진지함’이 처음에는 불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배려와 존중을 서로 이용하여 나만의 것을 얻으려는 이기적인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서로서로 의견을 모아서 만들어 놓은 약속과 규칙, 사회적 상식은 모두가 원칙대로 밀고 나가는 ‘철저함’도 가지고 있다.  북유럽 회사의 자유롭고 배려 깊은 분위기에만 사로잡혀 그것을 악용하는 외국인 취업자들이 결국은 철저한 약속 사회인 북유럽이 지켜보고 있던 ‘매의 눈’에 걸릴 때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북유럽의 학교는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작인 만큼 더욱 아이들 각자를 모두 존중하고 배려하면서도 늘 함께 의견을 모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분위기이다.  어느 한편으로는 굉장히 철저하고 엄격한 모습도 느껴졌다고 내 딸은 스웨덴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늘 자신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친구들은 함께 생각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한 아이를 타이르는 선생님을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는데, 우리가 떠올리는 꾸지람의 모습이 아니라, 그 아이와 거의 대화와 토론, 설득과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고 속 터지는’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딸아이의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은 항상 “아이의 말을 우선 들어보자”였다.  선생님과의 대화, 심지어 첫 전학상담을 위해 교장선생님을 만났을 때도 남편과 나, 선생님과 아이가 모두 원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다 함께 모인 이유와 주인공은 아이였기 때문에, 항상 아이는 먼저 발언권이 있었고, 어른들의 의견도 차례로 함께 경청하는 것은 그들의 상식이었다.

등수도 없고, 아이에 대해 물어보면 북유럽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의 각자 모습에 따라 잘하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보충해야 될게 무엇인지, 잘못된 게 무엇인지, 아니면 우리 아이가 얼마나 다른 아이들보다 잘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부모들에게는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나 또한 그런 평가 기준에만 오랜 세월 길들어서 살아왔었기 때문에 ‘이러다가 우리 아이 망치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처음에는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걱정과 달리 훨씬 더 빨리 새로운 언어와 문화, 학교생활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을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 배우고 있다는 것을 어느샌가 느끼게 되었다.  아이의 말을 듣게 되고, 그러면서 부모인 나와 남편도 서로의 말을 우선 들어주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마음에는 ‘우리는 가족이지만, 각자의 생각은 다르다’는 깨달음이 시작이었다. 나의 의견과 다르다고 내 가족이 나를 배신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북유럽의 선생님들을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뭐를 알까라고 무시해 버리지 않는 북유럽 선생님들은, 결국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그런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어떻게 서로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늘 갖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마음가짐을 발견하게 된 남편과 나는 우리 가족 또한 모두가 다른 네 사람이 서로서로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길을 찾기로 하였다.  울타리 밖에서 보면 우리 가족은 너무 닮은 꼴이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서로 다른 네 갈래의 생각이 나온다. 간단한 저녁 외식 메뉴를 위해서도 네 명이 의견을 낸다.  가장 먹고 싶은 2가지씩의 메뉴를 내고 가장 많이 나온 메뉴로 결정한다.  가장 어린 구성원인 둘째가 탈락된 자신의 메뉴를 다음 외식 때 꼭 먹고 싶다며 포기를 하지 못해도 그 문제를 가지고 나머지 셋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다. 어느 한 가족의 고민이 있으면 그에 대해서도 다른 세 가지의 의견이 쏟아진다.  그런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고민은 풀리기도 하고, 다른 관점이 나오기도 한다.  가족들의 마음은 투명해지기 시작했고, 혼자 끙끙 앓는 비밀은 오히려 바보스러운 고통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북유럽 생활을 통해 우리 가족끼리 지키자는 새로운 규칙도 많이 생겨났다.  규칙을 지키는 것은 서로를 생각하고 존중해 주는 마음이라는 것도 알고 고마워한다. 지키지 못하거나 싫을 때, 불만이 생겨났을 때 우리 가족은 다시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

‘매번 넷이서 뭘 그리 복잡하게 그러냐’는 주변의 이야기도 듣는다.  ‘아이들이 뭘 안다고 어른들이 알아서 하면 되지’라는 이야기는 더욱 많이 듣는 충고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딸아이에게 마음을 항상 열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북유럽 선생님, Monica 모니카 를 떠올린다. 북유럽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그냥 이름을 부른다.  미국은 반드시 ‘Mrs. Mr.  Dr.’ 등의 호칭을 꼭 붙여야 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북유럽 사람들의 진정한 평등과 자유로움이 미국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들이 결코 아니다.  나의 가족, 내 친구들, 직장 동료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며, 그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모두가 잃어 가고 있다는 삶의 행복과 만족은 오히려 쉽게 풀리는 숙제가 될 수 있다.  두 딸도 어쩜 그리 나와 남편을 닮은 듯하면서도 그때그때 다른지 신기하다.  아빠 엄마를 섞어 닮은 유전 인자의 복잡한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아이들은 각자 다른 삶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배우고 느낀다.  한 번씩 두 딸아이가 서로 충돌하며 투닥거린다.  싸움은 결코 어느 한편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다름’을 인정할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Everybody is different.’  우리 가족이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즐길 수 있게 해준 북유럽의 가르침이다.

 

by Angela

You may also like
부정부패한 북유럽 사회
덴마크 : 스웨덴 = 대한민국 : ?
정상과 비정상의 사회
북유럽 커뮤니티 노르딕후스에서 진행하는 “북유럽 여름학교”에 관해 여러분의 의견을 묻습니다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