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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을 통해 달라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의 모습과 생각 <4> 가족간의 신뢰, 약속을 지키는 부모

Photo by Niclas Jessen / VisitDenmakr.dk

오랜 기간 한국을 나가있다가 다시 돌아오니 예전에는 쓰지 않았던 새로운 표현들을 하나둘씩 배우게 된다.  그 안에는 그동안 한국이 겪었던 사람들의 변화된 생각과 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듣기 좋고 즐거운 표현보다는 나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표현들이 많아졌는데, 특히 ‘배 째라 식’이라든지 ‘아니면 말고’ 같은 무책임한 행동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많아진 걸 느낄 수 있다.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식의 표현은 예전에도 간혹 썼지만, 그래도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한국 사람들의 불안함도 더 커진듯하다.  아마도 그동안 서로서로 믿었다가 크게 낭패를 본 직간접적인 한국 사회의 경험들이 계속 쌓여온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것일까.  여러 번 확인하고, 그러면서도 계속 불안하고, 오히려 상대방이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면 당황하거나 감동을 느끼는 한국이 되었을까 하는 슬픔을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 땅에서 갖게 되었다.  미국에 살 때도 믿을 수 없는 불안함은 이곳저곳에서 팽배했었다.  여러 문화와 인종이 섞여 있는 가운데, 그런 신뢰할 수 없는 문제는 서로 다른 국가에서 살다가 이민 온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었다. 미국의 백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에서는 있을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이 다른 이민사회나 한국 타운에 가면 겪게 되는 것도 그냥 그러려니 무덤덤히 받아들이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오히려 현재의 미국 사회는 이러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을 위한 예방과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 많아졌다.

그러나 여러 난민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스웨덴에서의 생활은 많은 부분에서 미국과 달랐다.  한 번씩 서로 간의 규칙과 약속을 어기거나 교묘하게 악용하는 이민자들과 방문객들이 나타나서 분위기를 망쳐도, 언제나 바보스럽고 고집스럽게 정해진 약속대로 움직이고 생활하는 대다수의 스웨덴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답답하고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미국에서는 아예 ‘믿을 수 없는’ 각국의 이민 커뮤니티들을 미리 대비하고 차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북유럽 스웨덴 사람들은 늘 똑같은 방식과 규칙과 생각으로 어떤 이들과도 함께 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보편적인 판단, 일반적인 생각이 ‘일단 서로 믿어보자’라는 분위기로 고집스럽게 이끌고 나가니, 그 안에서 나의 의심하고 여러 번 확인하는 모습들이 오히려 눈에 띄는 이상한 행동이 되고 있었다.

북유럽에서 돌출되어 보이는 나와 가족들의 행동은 결국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불신이었다. 잘못된 출발이 무엇일까 고민해보니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조차도 신뢰할 수 없는 조급함과 불안감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유럽에서는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결과나 대다수의 판단에만 매달리는 결과론적인 잣대를 갖지 않는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대한 정당성과 책임을 쫓는다.  스스로의 믿음과 책임을 통해 서로 간의 신뢰할 수 있는 사회와 그룹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북유럽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지 그리고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부터 그러한 서로 간의 믿음과 약속을 존중하고 지키고 있는지 되묻게 만들었다.

신뢰의 형성은 아주 어릴 적부터 북유럽의 가정과 학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존중되고 실천하는 내용이다.  커다랗고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지지 않는다.  중요도와 우선순위도 북유럽의 약속에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부탁하나도 소중하고, 나 스스로에게 하는 작은 계획하나, 가족에게 던진 작은 말 한마디도 서로를 위해 지켜야 하는 소중한 약속들이다. 아이들에게 던지는 작은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이 서로 간의 약속과 믿음을 어떻게 지켜가는지를 배워가는 학습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말만 하고 그대로 하는 걸 못 봤다.’ 등의 꾸지람을 부모들은 쉴 새 없이 아이들에게 내뱉지만, 과연 아이들이 바라보는 부모들은 자기들이 말한 대로 꾸준히 변함없이 지켜가고 있을까.  사회적 규범과 룰과 양심을 철저히 따르며 ‘서로 간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것’ ‘스스로에게 한 다짐도 지켜야 할 소중한 약속’임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혼날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변호’의 기회도 주지 않고 세차게 몰아붙인다. “됐어! 그만해! 들으나 마나지. 핑계대지 마”등의 분노까지 쏟아낸다.  그렇지만, 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가장 많은 변명과 핑계,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는 양해와 이해를 수없이 허락한다.  “아빠 엄마가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아빠 엄마가 잊어버릴 수도 있지.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고 둘러대며 스스로 지키지 못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과 깨져버린 가족 간의 신뢰를 바로 외면해버린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말할 때 신중해져야 한다.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고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어야 한다.  부모의 능력과 상황에 알맞게 아이에게 약속해 주어야 한다.  때우기식과 위기 모면을 위한 거짓된 약속을 아이에게 남발해서는 안된다. 아이는 사회의 질서와 규범, 약속을 쉽게 무시해 버리는 부모를 언제든지 지켜보고 있다.  그런 아이 앞에서 ‘이 세상은 참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라는 피해자식 변명을 늘어놓아서는 안된다.  아이에게 ‘기발한 변명과 핑계만 찾으면 된다’라고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쳐줄 뿐이다.  부모에게 믿음을 갖지 못한 아이가 커가는 세상은 결국 ‘믿을 놈 하나 없는’ 불행한 세상인 것이다.  만약 서로 간의 약속과 내뱉은 말을 지키기 못했다면, 순간을 외면하지 말고 진실되고 평등한 마음으로 서로 이해를 구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가족은 신뢰와 함께 ‘존중’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덤벙대기 일쑤이다. 약속이나 계획을 남보다 더 정신차리고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메모 습관은 나의 약속들을 지키는 힘이 되어 주고, 아이들은 나의 그런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자주 따라 한다.  얼마 전에 작은 메모지에 ‘엄마가 월요일에 나와 해줘야 할 일’이라고 적어서 잘 보이는 곳에 부쳐놓은 둘째 딸이 떠오른다.  그때의 약속도 열심히 지켜주었고, 딸아이는 고마워하고 행복해했다.  서로 이해하고 믿어주고 약속을 지키는 가족… 가족의 신뢰가 주는 안락한 행복은 아이가 늘 그리는 아빠 엄마의 어릴 적 품과 같은 것이다.  작은 약속 하나하나도 소중히 지켜주었던 아빠 엄마를 늘 기억하며 아이들은 신뢰가 있는 세상를 꿈꿀 수 있다.

 

by Ang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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