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Edu & Society / 교육 / 북유럽을 통해 달라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의 모습과 생각 <3> 평등을 배우고 실천하는 첫번째 공동체, 가족

북유럽을 통해 달라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의 모습과 생각 <3> 평등을 배우고 실천하는 첫번째 공동체, 가족

Photo by Ulf Huett Nilsson / imagebank.sweden.se

어느 구성안에서도 항상 한국 교육의 위아래 질서를 배우고 살았던 내가 미국으로 이주하고 나니, 그들이 평등한 인권과 자유를 외치는 모습이 결코 쉽게 와 닿지는 않았다.  내가 한국을 떠나던 9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에서 이방인과 다문화는 표현조차 낯설었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이민사회인 미국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언제나 뒤섞여 있고, 그들이 ‘하나의 미국’이 되기 위해서 서로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국가의 운명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자유와 평등의 나라인 미국 안에서 난 그들의 평등하지 않은 경쟁과 차등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학교와 사회를 더 많이 경험했고, 현재는 미국의 대통령부터 진정한 평등을 외면하려고 할 만큼 ‘결국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평등할 수는 없는 것인가’란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러나, 난 미국을 떠나 스웨덴에서 진정한 평등의 의미와 가치를 지키려는, 평등이 결코 불가능한 환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부터 새로 배운 북유럽의 평등 의식은 나의 모든 사고와 가치를 뒤바꿔 놓았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생각도 완전히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스웨덴에서 미국의 이삿짐 박스들을 큰 트럭에서 내리는 스웨덴 회사의 팀장은 금발의 아줌마였다.  남편보다도 건장한 체격에 얼굴은 전형적인 북유럽 미녀였던 이삿짐 회사 팀장부터 나에게는 새로운 문화충격과 가치관의 혼돈이었다. 한참 짐을 나르던 도중 그 팀장은 유치원에서 끝나는 아이를 위해 3시 퇴근을 정확히 하고 먼저 떠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충격의 연속이었다.  남녀평등을 외치면 한국과 미국에서는 늘 남자와 여자 사이에 무엇을 했고 안 했고를 따지며 복잡한 셈을 하듯 남녀가 논쟁을 벌이지만, 북유럽에서는 일과 육아 등 어떤 상황에서도 각자의 주어진 능력과 서로의 조건 따라 동일하고 평등한 사고로 모든 결정이 이루어짐을 배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스웨덴에서 이삿짐을 풀고 큰딸과 함께 학교에 등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그들의 평등을 배우게 되었다.  첫 등교 날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함께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다니던 학교에도 장애우가 있었지만,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서 접촉 없이 생활하고, 간혹 학교의 큰 행사 때만 같이 무대에 서는 모습에도 나는 소위 ‘미국의 평등’에 감동을 느꼈는데, 바로 옆에 지나가는 여러 장애우들과 내 딸이 함께 복도에서 어울리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보다는 당황스러움이었다.  아마 한국의 어떤 부모들이라면 하나의 학교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에 분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장애우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사귀었던 그 시간들이 내 딸에게는 정말 값진 평등에 대한 교육이었다.  그 어떤 책을 통한 평등교육보다도 가장 아름답고 지금까지도 딸의 마음에 남아있는 소중한 추억이고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교육과 복지 앞에서 평등하기 위해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함께 하는 것을 북유럽에서는 누구나 반드시 배운다.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그들의 행복한 사회를 위해 맨 처음 배워야 할 근본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의 편견과 오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사라졌고, 장애우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얻게 되었다.

학교 면담에서 아이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가 함께 둘러앉아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경험, 스웨덴어를 못한다고 걱정하는 내게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정도의 과제를 아이와 상의해서 내줄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던 선생님, 다른 아이들보다 이해가 빠르고 뛰어난 학생들을 내세우기 보다 뒤에서 따라오는 아이들을 이끌어서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북유럽 학교의 생각,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른 자유의지가 있기에 함께 의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북유럽 공동체들의 시스템… 모두 스웨덴에서 하나씩 경험했던 새롭고 놀라운 평등의 의미와 배움이었다.

스웨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얻은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 가족의 생각과 생활도 바꿔놓았다.  남편과 나, 아이는 가족을 함께 이루는 구성원이고, 서로의 의견과 역할, 책임이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누구 한 사람만의 편의를 봐주고, 가족 중 누구 한 사람만이 중심이 되는 가족은 결코 가족의 행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생각은 가족 모두가 함께 공유되어야 하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Everybody is different.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를 우선적으로 가족 모두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끈끈한 정을 중요시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에서는 특히 어려운 이야기다.  특히 가족이라면 용납할 수 없거나, 너무 슬프게 들리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서로가 각자 다른 생각, 다른 성격, 다른 마음, 다른 상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 서로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사사롭다고 흔히들 말하는 일상생활의 결정에서도 우리 가족은 늘 대화의 장이 열린다.  대화할 때마다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다른 관점과 제안은 오히려 나와 남편보다 더 현명한 해결책이 될 때도 많다.  특히, 가족은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존중과 배려와 타협을 통해 ‘나와 다른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동체이다.  그래서 ‘가족’은 아이들에게 제일 처음 ‘평등한 공동체’를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울타리가 되는 것이다.

평등하다고 서로 덧셈, 뺄셈을 하듯 손해와 이득을 계산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모습과 생각과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평등이다.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한다면 이미 가족의 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배 아파서 낳았는데’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가 나에게 희생을 강요한 적도 없고, 내 능력으로 내가 잘나서 새 가족을 얻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내 삶의 모든 걸 던지는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다. 가족의 행복을 꿈꾸기 이전에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과 행복이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서로 간의 행복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나 아닌 다른 가족들 걱정부터 시작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선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내가 가족들에게 마음에 담긴 생각과 의견들을 솔직히 이야기한 적 있는지 생각하기 바란다.  나를 먼저 가족에게 보여주고,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만족하고 즐겨야만 다른 가족들의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가족의 말을 들어줄 때는 그들을 향한 나의 고집이나 계획, 기대는 모두 내려놓기 바란다. 늘 함께 하는 가족도 모두 서로 다르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신비하고 재미있는 우리 삶의 모습이다. 그 안에서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는 무대가 가장 소중한 아이들의 첫 번째 공동체, 가족이라는 것도 모두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가족의 행복은 모두가 존중되는 ‘평등한 가족’만이 만들어 갈 수 있다.

 

by Angela

You may also like
부정부패한 북유럽 사회
덴마크 : 스웨덴 = 대한민국 : ?
정상과 비정상의 사회
북유럽 커뮤니티 노르딕후스에서 진행하는 “북유럽 여름학교”에 관해 여러분의 의견을 묻습니다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