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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식 행복론

Photo by Niclas Jessen / VisitDenmark.dk

이미 다른 글에 익숙한 독자들은 아 또 이 소리를 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익숙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부언을 한다.  노르딕후스와 블로그를 통해 북유럽의 이것저것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생각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개인에 따라 이민이나 유학을 생각할 수도 있고, 비록 이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가치를 바꿈으로써 충분히 현재의 그 상태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결과물은 물론 북유럽이다.  역사와 현재 상태가 그들의 가치를 배우거나 깨달음으로서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행복에 관한 글이 있어서 첨부한다.  참조 하기 바란다.

북유럽 이민, 그리고 행복론

http://www.nordikhus.com/%eb%b6%81%ec%9c%a0%eb%9f%bd-%ec%9d%b4%eb%af%bc-%ea%b7%b8%eb%a6%ac%ea%b3%a0-%ed%96%89%eb%b3%b5%eb%a1%a0/ 

행복은 상상의 가치이다.  그걸 측정할 수도 없고, 절대적 정의를 내릴 수도 없다.  한 사람의 행복에 관한 가치가 다른 사람에게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그것도 많은 수가 공통된 가치를 갖고 있음으로 인해서 행복한 것 같이 보인다면,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북유럽의 공통 가치가 그 하나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을 갖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생각하는 것처럼 거대하거나 뭐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나쁘지 않은 상태로서 난 행복을 정의하고 싶다.  공포나 불안 같은 심리적 상태가 아닌 그저 그렇거나 인식조차 못하는 상태이다.  꼭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흥분의 만족이 아니다.  이 행복의 상태는 경험과 만족, 불만족이 겹쳐지며 퇴색돼 간다.  초기에 갖고 있던 그 소중한 기억들이 당연함으로 바뀐다.  이것에서 행복의 측정 계수는 점점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초심을 본인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잃어버린 결과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의 성장이라고 위로된다.

어제 가수 싸이는 새 앨범, 7집 싸이다를 발표했다.  그는 아시는 대로 한때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이었고, 현재도 아마 세계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의 업적은 수십 년 전 만하더라도 일행을 통해 명성과 수익을 보장받을 만큼 대단한 일이다.  이름만 대면 기억할 할리웃이나 빌보드의 엔터테이너들이 과거에서 오늘날까지 어떤 추억을 선사하고 있는지 되새겨 본다면 쉽게 과거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빠른 트렌드, 공개된 매체들 간의 경쟁, 엔터테인먼트의 수단 다양화 등으로 이제 그 유명한 싸이조차 잊고 지내는 날이 되었다.  당연하다.  오늘의 가치로는.  그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내가 가수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딴따라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성공과 상관없이 한류에 일조하는 한 사람으로 그저 보아주시면 좋겠다.”  그는 강남에 가지 않을 정도로 지난날을 어쩌면 잊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이렇다.  그가 최고의 정점을 이루었을 때 그의 가치는 100이 되어 있었다.  좋고 기쁜 일이지만, 다음번 일을 준비하는 시점에서는 0에서 준비를 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100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그가 비록 80, 90의 작품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는 0에 가깝다.  극단적인 말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현재 싸이의 어려움은 이것이다.  이런 상태는 그가 만든 것이 아니란 데서 그의 고민이 더할 것 같다.

다른 예는 사업에서 볼 수 있다.  바닥부터 시작한 사업가는 초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가 성공하며 초심이 점점 퇴색되어 갈 수도 있고, 변형될 수도 있다.  그가 사업에 행복을 찾기 위해 다시 초심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 초심조차 0이 아닌 50일 수도 있다.  이것은 자신감과 높은 성취감으로 사업의 성공을 이루었으나 결코 행복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행복은 자본과 주위 환경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지만, 절대로 그것만으로 이룰 수 없는 가치이다.  그래서 행복의 가치는 평등하고 누구에게나 허락된다.  초심의 마음을 삶을 살면서 하나씩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꿈꾸던 아파트 입주이거나 첫차,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자녀, 승진 등 여러 가지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렇게 애절하게 바라던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가치들을 이미 소유한 사람들이 무덤덤하더라도 자신은 상관없이 바라던 가치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됐는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너무도 당연하고, 누구나 쉽게 가져야 하는 것들로 오히려 자신을 책망하지 않았는가.

한 푼 두 푼으로 만족하던 나무 장난감 가게 목수는 어느 날 큰 부를 이루었다.  그는 자신이 벌던 그 액수에 0이 열 개나 더 붙는 사업을 할 때에도 그의 차나 집은 바뀌지 않았고, 손마디가 부드러워 지는 걸 염려했다.  그가 대규모 투자에 싸인을 할 때에도 한편으로 그의 작업장에 나무들이 잘 마르고 있을까 염려를 했다.  사업은 사업이고, 사람의 마음은 마음대로 다루어야 한다.  대기업을 이끌며 빌딩의 청소 상태를 점검하는 치밀함이 자랑이 아니다.  일해주는 직원들이 얼마나 사무용품을 낭비하는지 점검하는 경영자는 아직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회사를 떠나 개인으로 돌아갈 줄 아는 경영자는 사업을 넘어 이미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으로 돌아가는 일은 자신이 그도록 바랬던 초심으로 돌아가 무엇을 진정으로 이루고 싶어 했는지 그걸 다시 이루려는 그 마음이고, 그 마음이 지속되는 한 그는 일로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 가구회사의 오너 할아버지는 아직도 경영에 참여하고 회사를 개인의 것으로 고집한다.  미국적 눈으로 보면 소유욕에 독선적 마인드로 오해하거나 자신만이 지켜야 하는 고집불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할아버지는 아직도 오래된 구형 왜건을 타고, 유행 지난 양복을 수선해 입는다.  그가 자신의 기업을 본인의 개인회사로 유지하는 이유는 자신의 꿈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주주나 투자의 힘으로 자신의 기업이 그저 돈만 쫓는 기업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에게 사람들의 오해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세상의 삶에서 주인공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남을 돌아보며, 유행과 인기를 쫓아서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고 행복이란 그저 존재하는 단어로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과 어떤 상태이던 항상 초심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으로도 행복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진심으로 자신이 초심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현재 상태가 얼마나 축복받은 상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0에서 시작하여 현재 50, 또는 70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100으로도 만족이 안되는데 더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

북유럽에서 북유럽식의 기업가들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전통적 북유럽 마인드는 하는 일과 행복, 그리고 경험, 영향력 등을 모두 생각하여 즐거움을 찾는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오픈이다.  소위 재벌이라는 사람들을 목적이 있다면 쉽게 만날 수도 있다.  기꺼이 개인적인 시간을 내어 공통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워런 버핏과의 점심이 10만 불이란 이야기, 재벌 총수나 고위 공직자는 만나 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얼마나 행복과 거리를 두며 살고 있나 하는 이야기로 들린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고 존중하게 만든다.  갑과 을이라는 말이 창피하게 만든다.  내가 얼마나 퇴색되고, 내 경력이란 것이 얼마나 갑에 가까운지 겨루는 것이라면 참 슬픈 일이다.  아직도 삶을 잘 모르는 것이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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