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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과 한국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

Photo by Columbus Leth / VisitDenmark.dk

소통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럼 누구나 소통을 하는가에 대한 답은 또 아닌 것 같다.  어느 정도, 언제, 누구와 같은 조건들이 따라붙는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모르는 것들을 지식이라 한다면, 가슴으로 이해되는 것들은 습관이 되고 관습으로 바뀌며,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가 된다.  소통은 이야기다.  말이다.  개인이 개인과 나누는 말이다.  집단에서 나오면, 의견이 되고, 영향력을 갖는 것은 공식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복잡하게, 무슨 법칙 같은 게 없다.  그런데 사람의 성향은 다르다.  누구는 말하는 걸 좋아하고, 누구는 말재주가 없다.  또 십수 년간의 교육을 받으며, 속한 문화에 의한 관습이 전수된다.  내가 본 한국은 말하는 걸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나누는 것을 싫어하는 문화다.  “나만의 생각, 정보는 나 또는 은밀성이 보장되는 개인과 나누는 것이고 이것이 배려다.”  “지나친 의견 표현은 오지랖이란 말로 묵살된다.”  “가만있으면 중간 대접은 받는다.”  이 같은 개념들은 나를 20여 년 만에 다시 깨워주는 관습들이다.

여러 가지의 이유는 소통이란 의미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에서 본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설득하고, 공감시키는 목적이 소통은 아니다.  어떤 것은 맞고 다른 것은 틀리다는 정의를 하려고 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상부와 하부, 지배와 피지배, 갑과 을은 소통을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리고 그 소통은 명령이 되나?  내가 본 한국 조직의 형태로는 최소한 그렇다.  소통을 강조하는 국정 수반이 참석한 국무회의를 TV로 본다.  회사의 회의를 간접으로 경험한다.  교실에서 친구들과의 동아리 그룹 회의를 엿본다.  이들의 이유는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 옷차림, 말투가 달라졌을 뿐 하는 행동은 똑같다.  누가 얘기하든 하는 사람은 하고, 적는 사람은 적기만 한다.  그것에 반대하면 다른 의견들은 나쁜 것이 된다.  어떤 의견이 나와도 반대하는 사람은 항상 반대한다.  오히려 일방적인 전달을 더 선호할 때도 있다.  말을 줄이고, 의견을 감추는 것이 생존 수단이었던 역사를 거치면서 한국의 말 기술은 없어졌다.  소통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배운 적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그런 적이 없는데 말하고 살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소통은 트렌드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알려서,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유이다.  그 사람이 기대하는 설득을 하고, 영향력이 행사되고, 그대로 실천되는 것은 명령을 했기 때문이지 소통을 한 것이 아니다.

북유럽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별의별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나 웹이나 SNS의 특성상 개인적인 정보가 없으면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알 이유도 없고, 그럼에도 난 무슨 일을 하는데 사업이 가능하겠나 하는 간단한 질문도 비밀로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게 막아놓는다.  누군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경험에 의한 피해 의식이거나 자신의 정보가 새나가면 안 될 만큼 중요해서 그럴까?  익숙해서 그렇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서로 알면 좋을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정보는 나만의 것이란 폐쇄 정보에 대한 선호도가 월등히 높다.  사기나 잘못된 주식정보에 의한 피해를 왜 당할까 싶지만, 나만 아는 정보라는 신뢰가 그 정보의 진실성을 은폐시키기 때문이다.  SNS의 목적은 내 의견을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는 일이다.  자랑도 좋고, 비판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상의 세계와 현실을 연결해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현실의 세상과 연결해 진실을 생각해보면 무척 많은 거짓 정보들이 있지만, 그 실상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와 몇몇의 정보이니까 그것에 신뢰가 더해지는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참 말을 안 한다.  쓸데없는 행동 모두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모이면 꼭 어떤 주제들이 나오고 서로 떠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기의 이야기도 하고 경험도 하면서 서로 친해진다.  사실 이 정도만 되도 무척 행복한 조건이란 생각이 있다.  사람이 귀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던 그렇다고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이 문화는 북유럽이 심하지만 독일이나 서 유럽의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통에 목적이 없다.  누구를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 말은 소통이 이미 아니라, 교훈, 명령, 발표 등으로 바뀐다.  그리고 소통에 반드시 답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답을 얻으려고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겠다 또는 이해한다고만 해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소통은 말하기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해진다.  그래야 평등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나이, 지위, 성별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말을 나누는 것이 순수한 소통이고 그것을 한국 정부나 회사, 관공서에서 하겠다고 하는 상태다.  가능할까?  나는 그런 의견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환영이다.  시간이 흐르면 왜 문제인지 스스로 알 수 있는 시간이 오리라 생각한다.

어떤 조건이나 상태에 상관없는 소통이 어디서나 이루어지면 좋겠다.  결정이나 옳고 그름이 소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솔직하게 자기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겨나기를 바란다.  하루아침에 문화가 생길 수도 없지만, 하루가 계속 이어지면 문화가 된다.  소통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사실 너무 놀랍고 좋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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