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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과 미국 문화 속에서 느끼는 자유라는 의미

Photo by Maskot/Folio / imagebank.sweden.se

인간이란 단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는 자유다.  다른 동물과 여러 자연법칙 속에서 인간을 구별하는 그 이유도 자유가 있기 때문이고, 종교나 국가, 정치, 도덕 등도 자유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도 일정의 구속과 테두리를 가진다.  이것 또한 자유의 하나이고 그 범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도 자유다.  세계의 여러 문화는 그 특성에 따라 다른 방향성을 가진다.  그것들이 세계의 상식으로 포함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긴다.  이것 또한 문화의 자율성이다.  나 같은 극소 정부 주의자들은 무정부 주의자들과 구별되길 원하지만, 한꺼번에 묶여서 같은 취급을 받곤 한다.  극소 정부 주의는 인간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자유주의다.  국가의 기본적인 존재의 이유를 제외한 모든 통제권을 개인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제한적 무정부 주의는 이미 세계의 각 문화에서 실현되었거나 지지를 받고 있다.

덴마크의 자연 보호법과 스웨덴의 공동 접근권은 자연을 모두 같이 소유하고 즐긴다는 권리에 관한 법이다.  물새들이 산란을 할 시기에는 물가에 접근할 수 없다던가 오랜 고목을 지키기 위해 도로를 우회시키는 등의 보호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즐길 자연에 관해 누구라도 평등하다는 상식을 법으로 만든 것이다.  큰 틀은 자연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개인 소유지라도 훼손을 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들어가 즐길 수 있으며, 통행권 또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회 주의 성격이 강한 토지에 관한 법에서는 토지에 대한 소유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인정되기도 한다.  현실은 같은 상황이지만 내 집이 아니라, 내가 집을 이용할 권리를 말한다.

미국의 텍사스주에서의 오래전 상식은 말뚝으로 내 땅을 등록한다는 것이다.  원주민들과의 토지 거래에서 하루에 얼마라는 토지의 단위가 소설 속의 이야기 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토지의 이용과 등록에 관한 법에는 소유가 없는 무 점유지를 개발하여 등록하고 일정 기간 소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 소유로 인정되는 조항도 있었다.  또 법의 규정이 자세하지 않아서 어떤 판단도 하기 곤란한 경우에서는 내 할아버지가 하던 대로라는 Grandfather’s law가 지금도 인정된다.  이런 이야기는 법이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상식이며 동의라는 말이다.  이 같은 토지의 등록 방식은 국가의 경우 현재에도 통용된다.  한국의 국토를 어느 부동산 업체에 등록하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며, 최근 독립한 나라들의 영토를 UN이 지정한 것은 아니다.  인접국과 역사에 근거한 국가의 토지는 관계국의 반발만 없으면 국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역사적으로 자유를 강조한 문화는 현재에도 자유를 침해하는데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유는 우리가 인간이라는데에 근거한다.  그러지 않은 문화의 자유는 오히려 왜곡되고 과대 포장되며, 스스로를 위축시키는데 일조를 한다.  오랜 새장 생활을 한 새들과 길들여진 가축이 야생에서 스스로 생존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본의 NHK 방송의 뉴스는 NHK 톤이라는 이미지를 만든 아주 보수적인 틀이 있다.  변화를 시도하지만 지금도 남아있는 남자 앵커들의 짙은 색 정장과 밝은 색 정장의 여성 앵커, 얼굴에 떨어지는 뽀얀 조명 톤, 정중한 인사와 가지런히 모은 두 손 등은 TV 뉴스의 교과서같이 보였고 한국이 모방하던 시기도 있었다.  아직도 일본 공무원, 회사원들의 복장은 천편일률적이고 답답하다.  그들의 인사, 말투, 대화의 첫 마디도 거의 잘 훈련된 학생같이 보인다.  중국은?  한국은?  자유에 관한 선지자들의 정의는 어떤가.  가리고 절제하고 내세우지 않는 굳건함, 스스로를 위로하는 훌륭함…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내가 그렇게 믿고 살았던 그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나는 서양 문화가 더 익숙하지만, 동양의 문화도 나름 재미를 느낀다.  그러나 아주 현실적으로 우리가 맞고 있는 세계 문화의 흐름에는 인간 개인이 얼마나 자유를 누리며, 내 사고와 상식이 사회에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더 무게를 둔다.  아주 잠깐만 개인의 자유에 관해 생각해 보면, 동거, 낙태, 마약, 도박, 집회, 주장, 결사 등에 관해 미국과 스웨덴과 한국을 짐작해 보기 바란다.  혼란과 소란스러움으로 처음 느껴지는 서양의 자유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만큼의 긍정과 동의로 나타날 수 있는지.  내 얼굴 가린 내세움으로 마지못한 동의가 얼마나 쓸떼없는 국가의 낭비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자유, 인간의 자유에 대해 사고와 생활을 하지 않은 국민들이 창의적인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부터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공산당 일당의 전제 독재국인 중국에 버금가는 개인의 자유 억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그 원인은,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책임을 느끼는 공무원들이다.  공무원의 수준이 그 사회를 결정한다.  하지만, 그 자유에 대한 정의도 공무원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보다, 당연한 듯 바라보는 국민들이 더 놀랍다.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4차 산업혁명은 다시 선진국들의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을까?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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