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iving / 일반 / 북유럽과 미국에서 생각하는 검소한 생활과 한국이 어떻게 다른가

북유럽과 미국에서 생각하는 검소한 생활과 한국이 어떻게 다른가

Photo by Carolina Romare / imagebank.sweden.se

소확행은 요즘 트렌드다.  하다못해 TV 광고에까지 등장하는 단어다 보니 나도 눈길이 갔다.  한마디로 스웨덴의 Lagom, 라곰인데 작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하는 행동이다.  라곰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균형을 맞추는 스웨덴의 아주 오랜 생활 습관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 착각이 든다.  작은 것이 무엇인가?  지나친 것이 무엇인가?  기준이 뭘까 궁금해진다.  미국적인 사고로 추정하면 간단하다.  자신의 소득에 맞추어 비교하면 된다.  중고차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켈리 블루북에는 소득이 얼마일 때 어느 정도의 차량을 살 수 있다는 자세한 조언도 있다.  집의 모기지론을 제공하는 론컴퍼니는 또 자신의 소득, 가족, 연령, 지역, 생활패턴 등에 맞추어 월에 어느 정도의 페이먼트가 적당하다고 가르쳐준다.  마찬가지로 연금 보험회사는 차량, 집, 생활비, 교육 등과 같은 지출에 맞추어 연금 납입금액을 상담한다.  이 여러 지표들이 과연 내게 꼭 맞는 생활 패턴이고, 정말 그러한가가 내 첫째 의문이다.

수개월 전 타계한 잉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창업주는 수십 조를 넘는 재산을 소유했던 사람이다.  난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부자들의 말을 듣자면 자신이 소비 가능한 액수를 넘어서는 부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사회에서 천억이란 숫자가 큰 부자라고 가정할 때, 3천억이나 5천억은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개인이 기업의 가능성을 생각지 않는다면 천억 단위의 자산가들은 이미 수입과 소비라는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는다.  캄프라드가 수십 년 애용한 자동차는 낡은 볼보 240DL이다.  언론에 오르내리며 꽤 유명한 차가 됐다.  그의 스웨덴의 앨름훌트에 있는 고향집은 자산에 비해 과히 크지 않은 집이다.  그는 검소했는가?  세계 최대 부자의 검소한 삶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검소한 부자들이 내 두 번째 의문이다.  자본주의적 시야에서 그렇다.

한국의 소비를 사람들은 비판한다.  자신과 좀 다르다고, 집은 포기한 채 카푸어의 길을 걷는다고 떠든다.  결혼할 때 모아둔 돈이 적다고 양가에서 싸우기까지 한다.  그럼 돈이 없으면 평생 행복하지 않은 채 살아야 하나.  그래서 나온 소확행으로 과연 행복의 가치가 이어질 수 있을까?  이것이 한국식 검소인가?  이것이 마지막 내 의문이다.

모든 것이 사람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개인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해하는가.  개인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내 생각이 전 세계의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를 위해 무얼 희생시킬 필요도 없지만, 나를 희생시킬 일은 더더욱 없다.  내 가치가 그렇다면 말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좋은 점은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된다는 점이다.  한국이 어설프게 따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  내 수명의 가치는 얼마, 내 부모는 얼마라고 인정해야 한다.  심한 예를 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조건, 노는 시간, 심지어 내 사랑의 가치까지 비교하고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부자들의 사랑은 비싸다.  돈이 많이 든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이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소득에 비례한 가치로 사랑을 표현한다.  더하여 부자들의 소비는 미덕이다.  사회를 위하고 산업을 돌리는 힘이 된다.  부자가 소비하지 않는 것도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해야”라는 무언의 약속을 요구받는다.  이 동네에서 살 정도면 이 정도는 소비해야, 이 학교 학생이면 이 정도는 봉사해야…라는 무언의 약속이 있다.  아주 부자 동네에 이사 간 이민자들이 왕따 당하는 대표적 이유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이 정도 소비하고, 이 정도 동네를 위해 기부하고, 이 정도를 그냥 버릴 줄도 알아야 되는데 그것이 이해가 안 되는 이민자들이 부지기수다.  자유주의 미국에서 내 소비를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같이 어설픈 소녀감성으로 좋은 동네를 그냥 다 망쳐놓는다.  미국의 검소는 개인의 미덕이며, 습관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와 이웃의 문화다.  문화를 먼저 지키고, 개인의 것을 하면 된다.  이것이 미국식 검소다.

북유럽의 검소는 새로운 게 아니고 폼 잡기도 아니다.  문화다.  핏속에 숨어든 생활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개인과 사회의 활동을 구분한다.  그렇게 화려한 사무실과 인테리어로 성공한 사업가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집은, 차는 아주 소박할 수 있다.  차고 다니는 시계나 옷값이 집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다.  이는 개인의 결정이다.  그냥 누가 뭐라니 그렇게 그렇게 보여주는 쇼가 아니다.  삶의 철학이다.  북유럽에선 개인의 철학적 사고가 없는 검소는 구두쇠나 욕심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구두쇠를 북유럽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나름대로 뚜렷한 이유가 있다.  오히려 이웃들은 사회적인 소비를 더 생각한다.  미국보다 조금 더 크고 깊은 생각에 가깝다.  그리고 더 개인적이다.  캄프라드가 낡은 볼보를 평생 몰았는가는 개인의 일이다.  그것이 그 한 사람을 검소하다고 표현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가 사업을 통해 보여준 사고들에서 더 검소함을 느낀다.  세금을 줄이려고 회사를 옮긴 이유가 이해가 된다면, 과거 전쟁에서 적국에 호의적이었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인정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한 사람의 검소하다는 말이 인정을 받으려면 그래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내가 좋아서 하는 단순한 행동인데.

내 새로운 자동차는 내 연봉을 훨씬 능가하는 고급차이고, 유지비도 꽤 큰 부담이라는 말이 왜 이상한가?  한 사람의 선택일 뿐이다.  내가 모든 월급을 다 쓰는 취미활동이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나 같으면이라고 시작하는 오지랖들은 꽤 오래된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한국 사람은 땅 산 사촌을 참 많이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영화나 TV 속의 쇼를 현실로 이해하는 소녀감성의 소유자들이다.  옷이, 차가, 쓰는 돈이 얼마니 이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력가인가 자동 계산이 머릿속으로 수십번씩 하루에 돌아가며, 비웃음과 시기와 질투가 스마트폰을 넘기는 순간순간마다 교차하는 감성의 마술사들이다.  한국의 얄팍함은 자신이 없음에 기인한다.  내가 없다.  어디의 누구 아들/딸로 태어나 어떻게 살았다는 그 역사가 개인에게 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누구이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어설픈 미국식으로 자본주의 룰을 따르고 있지만, 도덕적으로도 완벽해야 하는 이중성이 돋보인다.  그러면서 졸부는 싫고, 깨어있는 지식인의 생활을 보여주려고 한다.  한 마디로 도덕적으로 완벽함의 바탕을 가지고, 미국적 자본주의를 숭배하며, 유럽식 개인소비로 쇼를 하는 소녀/소년들이다.

검소는 개인의 사고다.  이웃이 결합되는 미국과 사회를 보는 유럽과 달리 한국의 검소는 그 기준이 없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소확행 이란 트렌드로 정말 행복을 느끼며 사는 분이 계시다면, 이미 소확행이 필요 없는 분들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검소나 소비 같은 가치 이전에 개인을 먼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by Luke

You may also like
북유럽을 포함한 다른 문화들의 완성
Genuine Nordic Design, 진짜 북유럽 디자인
부모 돈은 누구 것인가
아이슬란드 축구팀의 스토리, 기적은 없다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