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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유럽에서 느끼는 이야기

최근 미국에서 한 티브이 프로그램이 방송이 됐었나 봅니다.

요즘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일을 비꼰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아이들의 행사에 가면 부모들이 모두 자기 자녀들의 노래나 춤은 볼 생각도 안 하고 모두 셀폰으로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에 열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런 광경을, 왜 화질도 좋지 않은 조그만 모니터로 사랑스런 자녀의 모습을 보나?  나중에 SNS에 올릴 목적이라면 1초만 찍고 나머지는 자신의 엉덩이를 찍어서 합쳐서 올려도 사람들은 모두 “와 춤 잘 춘다” 라고 칭찬해 줄 거다.  왜냐?  보지도 않고 그냥 그럴것이다 라고 칭찬해 주니까.  사람들이 자기 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이 춤추고 노래하는 걸 누가 보나?  그럴 거면 사진이나 비디오 찍을 시간에 차라리 사랑스런 자녀의 모습을 생생한 라이브로 최고의 화질과 함께 직접 보는 게 어떤가? 라고 비꼽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 사진들, 자신의 결혼식 사진은 일 년에 몇 번이나 들여다본다고 자식의 노래하는 모습을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찍어두나 차라리 그 순간을 즐기는 게 더 좋았지 않았을까 반성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제가 이런 반성을 한건 처음이 아닙니다.  몇 년 전 뉴욕을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놀러 갈 일은 없는 곳이지만 한동안 안 가면 생각나는 뉴욕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때도 시간을 내어 오랜만에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New York Metroploitan Museum은 영국 런던 대영제국 박물관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꽤 유명한 곳입니다.  선진국의 것일수록 박물관의 관리와 작품들이 훌륭하죠.  남의 것을 강탈한 역사가 있었거나 직접 매수할만한 자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도 웅장한 건물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을 나름 집중해서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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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제 시선이 딱 굳은 것은 이집트의 한 유물 앞에서였습니다.  신전을 모티브로 한, 일종의 건물 그 자체였습니다.  박물관의 규모가 크다 보니 건물 내에 건물이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실제의 건물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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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의 세부를 볼 수록, 일부이지만 서구의 영향을 받은 것이 너무 신기하고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감동이 있었었기에 한참을 머물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멀리 있던 벤치에 제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건물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떨어진 거리에 놓인 벤치였는데 그곳에서 자그마한 스케치북을 꺼내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는 노신사였습니다.  저도 그후 건물을 몇 바퀴를 돌며 사진을 “아 다 찍었다” 라고 생각하고 좀 쉬기 위해 그 벤치로 갔습니다.  그때까지도 스케치를 하던 그 노신사는 잠시 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도 미술을 전공했기에 자연스러운 호기심에 그 스케치북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그 노신사도 그걸 의식했는지 저에게 보라고 스케치북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특색 있는 선 표현과 개성을 기대하며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테두리가 낡아 꽤 운치 있어 보이던 그 스케치북에는 조잡한 선들과 단순하게 표시한 그림자가 마치 아이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수준 낮은 그림이 있었습니다.  표정을 감추어도 제가 조금 실망했음을 느꼈는 듯 그 노신사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제 그림이 당신의 기대에 미칠만한 수준 높지 않은 그림이란 걸 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제가 보기에 완벽합니다”  제가 마치 왜요? 라고 물어볼 순간의 시간을 배려하듯 잠깐 뜸을 들이다가 “이 그림의 나머지 부분, 감성까지 표현한 부분은 여기 있으니까요”  하면서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림은 그 노신사가 그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노신사는 사실 가슴에 그 느낌을 담고 있으면서, 손으로 그걸 노트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사진으로 남기는 “기록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그 노신사는 가슴으로 그걸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차원이 다른 감상이고 감상시의 느낌을 온몸 세포 하나하나에 기록하듯 새겨 놓은듯한, 그래서 마치 이 작품은 내 거야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만족한 미소가 그 노신사에게 어려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그 많은 작품들을 사진으로 기록한들 얼마나 그걸 다시 들여다보겠으며, 또 그 감동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겠습니까.  감상의 순간,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자신에게 아무 여과 장치 없이 그대로 기록한다면 그건 작품들뿐 아니라 감동까지 기록하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일이 있던 이후에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얼 보았는지 가슴으로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무심코 격었던 에피소드가 제 습관까지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이나 비디오 같은 단순 기록 장치 외에, 감동이나 사랑까지 기록할 수 있는 기억 장치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가슴”이라는 기억 장치는 용량과 사용 수명이 무한대이며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업그레이드됩니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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