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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의 한인 이민

미국의 추수 감사절이 어제 지났습니다.  오늘은 Black Friday라고 전 미국이 쇼핑에 들썩 일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있는 북유럽은 아무 일도 없지만 말입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생활이 전혀 달라지는 게 아주 흥미 롭습니다.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워도 말이죠.  심지어 도시 내에 세 나라의 국경이 겹쳐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 경우는 매일매일을 국가의 국경을 넘는 것이 되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비록 이민은 아니겠지만요.

나라를 넘어 영구 정착을 계획하는 것을 이민이라고 합니다.  철새들은 매년 두 번씩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특히 정보나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수 십 년 전에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해외 이민사는 약 100여 년이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의 점령기였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의 이민이 아니라 일본 국민으로 기록됩니다.  그런 경우를 제하면 약 60여 년 정도가 순수 대한민국 국민의 이민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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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 사람들은 하와이와 그 도서에 농장 노동력을 보냅니다.  소위 사탕수수 농부인데 이 이민자들의 후손이 그대로 남았고, 그래서 오늘의 하와이가 일본 사람들이 메이저 인구로 대두되게 된 것입니다.  이 당시의 이민자들은 순수 일본 사람만 아니라 한국인도 섞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적, 이름 등이 일본에 근거하였기에 일본인으로 현재까지 집계됩니다.  그들이, 그러니까 하와이의 일본인들이 미 본토로 이주할 당시 소수의 한국 태생 일본인들도 이주했고, 그들의 가족이 미 본토로 직접 이민을 가게 된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아주 소수였고 한국 이민 문화라고 일 겉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였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국 문화가 아무 여과 장치 없이 대한민국으로 밀려들고, 보리죽에 보잘것없는 생활을 하던 대한민국 중산층은, 사실 중산층이란 단어도 무의미할 정도로 최 빈곤국 중 하나였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냉장고와 에어컨을 집에서 직접 사용하며, 고기와 아이스크림이라는 꿀보다 더한 천상의 음식을 매끼 먹는 미국인들은 마치 신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 후 유학을 할 수 있는 소수의 부유한 학생들과 그때까지도 발달하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이끌 노동력들이 이주를 시작합니다.  이 당시는 그전의 한인 이민자들과 같은 조건이었지만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미일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인들은 차별되고, 강제 이주되었으며, 극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빈자리를 메꿀 다른 노동력이 필요했으므로 초기 한국 출신 일본 이민자들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후 본토로까지 이어진 노동자 이민은 1985년 경까지 계속됩니다.

1985년으로 미국의 한인 이민사가 조금 바뀌는 이유는 해외여행 자유화 정책입니다.  1985년 60세 이상, 1989년에는 전 국민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됩니다.  그전 이민의 목적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꿈”이라던가 “학업” “언어”등의 달콤함이 아닙니다.  단순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그대로 조국에 있다가는 다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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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알립니다.  이 글의 표현을 다소 직설적으로 이끕니다.  저는 직업과 인간의 성격 등을 비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다소 거친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계층, 학업, 직업 등에 차별을 두어 사람을 구분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배운 것 없었고,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그야말로 극빈자들이었으며, 일부 대사관 및 해외 공관 직원들, 대기업 임원, 부유한 집안의 유학생들 등 아주 극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이민을 했을 뿐 나머지는 지금의 일부 전쟁 중인 나라의 난민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민 한 후 자신의 생활을 조국에 허세를 떨듯 전파했고, 사람들은 미국을 마치 꿈의 나라라고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현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여행 자유화가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시행되고, 비로소 대한민국의 국민이 여권이라는 걸 만들 수 있었고 해외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 10여 년 동안은 일부 부자들의 잔치였긴 하지만 이들이 제일 처음 한건 해외의 친지 방문입니다.  직접 가서 이전의 해외 이민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막노동으로는 부자가 되기 힘들 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언어도 못해 머리만 글적 거리며 청소나 접시 닦기로는 차라리 한국서 사는 게 낫다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여행 자유화 혜택의 한국인들 눈에는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군사 독재의 정치 아래에 있었고, 아직 가난한 나라의 로봇 같은 인생을 가지고 있던 이 들은 새로운 눈이 떠졌습니다.  미국인과 동등한 조건이라면, 더 열심히 일한다면, 조금 장사 밑천이 있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아직 이민의 꿈은 깨진 게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건설 붐과 수출 붐을 타고 해외 지상사 직원들이 급격히 많아진 것도 해외 이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학, 투자, 사업 등의 목적으로 이민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 당시 1985년 이후의 이민을 미국 이민 2세대라고 구분하여 생각합니다.  초기 이민의 1세대와는 사람들의 종류가 다릅니다.  극빈자와 중산층, 노동자와 지식층, 살기 위한 이민과 더 잘살아보자 라는 이민 목표 등 초기 이민자들과는 서로 섞일 수 없는 게 많았고 이 현상은 현재 미국 내 어느 한인 이민자들에게도 다 나타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없는 사회의 벽이 생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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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000년도를 거치며 요즘에 이르는 시기를 저는 이민 3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과의 다른 점은 모두 중산층 이상과 초 상류층 등 부자들의 이민이 많아졌고, 자녀 교육을 위한 사치 이민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일을, 특히 힘든 일을 안 한다는 겁니다.  노동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사업이나 투자 등 화이트 컬러의 업무이거나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 이민, 그냥 그냥 놀기 위한 호화 이민 등이 부쩍 많아진 사실입니다.  미국의 불경기로 돈 있는 자를 위한 이민 카펫이 깔린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이민 3세대는 이전의 1세대를 그냥 다른 후진국 국민쯤으로 생각하고 주로 이민 2세대들과 교류하며, 서로 서로가 필요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까지 이민자 1세대들의 마지막 꿈은 성공해서 조국에 돌아가는 것이었으나 뒤를 잇는 이민자들을 보며, 자신의 조국은 없다 라고 느끼게 되었으며 자신들보다 더욱 미국에 잘 살고 있는 2세대들에게 위화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출발 조건부터 다르게 생활하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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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유럽은 단순 합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특히 이민이 막 시작될 60여년전 한국 사람은 유럽에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세계의 문화를 알고, 직접 체험하고 그런 생활은 선진국 이상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야 가능 한 일 입니다.  그 당시 한국은 그럴 여유도, 능력도, 정신도되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노동자 수출로 첫 유럽 이민사가 공식화 됩니다.  소수의 공관직원이나 기업임원등의 극소수를 제외한 일반인 으로서의 첫 이민은 독일에서 시작 되었고, 이후 수천 명 이상의 광부, 간호사, 기술자등의 단순 노동자들이 이민을 이루었습니다.  오해의 소지로 언급드립니다.  이 당시 간호사를 단순 노동자로 언급한것을 현대의 사회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그 간호사들은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엘리트 출신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그들의 독일에서의 일은 간호사의 일이 아닌 간호 조무사이거나 그것보다 한참 모자란 단순 노동이었습니다.  그후 이들의 가족이 뒤를 이었고, 비로소 영국이나 프랑스등 주변국으로의 이민이 시작됐습니다.  유럽의 교육 특성상 저렴하거나 무료인 학비로 인해 유학생들이 많았고, 난민 흡수정책으로 당시 독재국가이던 한국에서의 이민도 받아들여 졌으며, 종교이민, 태권도 교사등 특정 계급에 대한 이민이 주로 이루어 졌습니다.

초기 1세대 유럽 이민이, 제 생각에는 2단계인 엘리트 이민단계로는 아직 진전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따지자면 1.5세대 쯤이라고나 할까요.  엘리트 계층, 사업이민등 노동자 계층이민이 아닌 일반 이민의 수가 굉장히 증가하고 잇습니다만 아직은 그 수가 미국에 편중된 느낌입니다.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언어와 친척, 친구등 지인의 부재 입니다.  이민 역사가 1세대와 연결되지 않고 그 뒤를 이을 특별한 사회 현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십개의 나라들과 다른 언어로 이뤄진 유럽의 한인들이 서로 서로 협조할 방법도,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끔 한국내의 한국인들보다 더 유럽을 모르는 사람들도 존재 합니다.  이유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세계적 시야가 그만큼 좁은 거지요.

유럽의 넓이는 미국과 비슷하며 나라의 수는 미국의 주와 비슷합니다.  이 안에 각기다른 인종이 다른언어를 쓰며 섞여 살고 있습니다.  각 나라의 한국 이민자들도 각각 다르게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 되지 않아 유럽에도 이민의 2세대 바람이 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미 포화 상태로 한국과 다름없는 미국 대도시는 새로운 이민을 받기에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와 한국의 고유 문화가 유럽과 너무 흡사한것이 많고 생활 자체가 언어만 다른 서울 이거나 한국의 어딘가로 느껴질 만큼 비슷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또 학문적인 측면으로 한 문화의 뿌리를 알고 싶으면 그 근원지를 가 보듯, 마치 신라를 알기위해 경주를 찾아가듯, 현재의 기술과 미술사가 바로 집앞에서도 느낄수 있는것도 또 하나의 재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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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EU의 통합 정책으로 부쩍 많아진 과거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의 저급 노동자들, 박애주의 정책으로 받아들여진 아프리카 난민들을 보면서 한국 이민사가 유럽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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