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Design / 일반 / 말괄량이 삐삐가 나타났다

말괄량이 삐삐가 나타났다

Photo / 삐삐 롱스타킹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얼마 전 내 두 번째 책 “노르딕 소울”을 출판해준 시공사에서 연락이 왔다.  삐삐 시리즈 책을 출판 예정인데, 노르딕후스에서도 소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이미 몇 번 작가인 아스트리드에 관해 글을 쓴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이 나왔다.

95개 언어로 번역되고 75년 동안이나 인기를 끈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언어로 만났는지 모른다.  또 얼마나 많은 매체로 접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TV 드라마 시리즈로 소개된 삐삐는, 애니메이션으로, 소설로, 그래픽 노블이라는 만화로, 시대와 유행을 뛰어넘으며 전 세계 독자들을 한 세기 가까이 동안 감동시켰다.  나는 삐삐를 어린이용 문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살았던 발자취를 직접 가보고 느꼈던 스웨덴 이웃의 입장이 된 이후로는 책 한 장을 읽기 힘든 적도 많았다.

나는 2년 전 삐삐를 내 책에 소개했다.  감히 그녀의 마음을 내 책의 자연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누고, 그 안에 귀속시켰었다.  그러면서 아스트리드의 마음을 마치 이해하는 듯이 신나했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1940년대에 아이를 생각하는 북유럽의 교육 가치관은 현재와는 많이 달랐던 과도기였다. 어떻게 보면 매일매일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며 아이들을 어찌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한국의 현실이 그 당시 북유럽에도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자라야 한다는 ‘해답’ 찾기에만 관심을 두었던 1940년대에 자유롭기만 한 삐삐의 등장은 스웨덴 부모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앞뒤가 안 맞는 모습과 뒤죽박죽인 삐삐를 보며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아이라고 부른다. 다듬어지고 정리된 모범생 친구들인 토미와 아니카를 통해 우리도 함께 삐삐에게 동화되어 가는 것이다. 아픈 린드그렌의 딸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 위로는 맘껏 뛰놀고 하루하루를 자연과 함께, 동물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며 씩씩하게 꿈을 펼치는 삐삐의 모습이었다.”

 

110919

Photo / 세상에서 가장 힘센 소녀 삐삐, 출판사 시공주니어

 

삐삐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시간여행을 좀 해야 한다.  한국이 해방되던 그 때로 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난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으나 역사의 기억을 좀 살펴보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 유럽이 가난과 파괴, 기아에 시달리던 때다.  패전국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빵 한 덩이를 사기 위해 끝없이 긴 줄을 서야 했으며 생필품과 곡물의 생산은 철저하게 파괴된 이후였다.  사람들은 가난으로 우울증에 쉽게 빠졌다.  지역에 따라 알콜과 마약이 성행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인간성은 파괴당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도 익숙하게 바라보던 그런 사람들이 많던 시기다.  전쟁의 참화가 다행히 비껴간 북유럽이었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멜랑꼴리”의 분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삶의 희망을 찾아 한 걸음을 내딛기 바로 전까지의 시기가 “삐삐 롱스타킹”이 탄생한 시기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사랑을 찾고 싶어 했다.  신과 그들의 눈에 보이던 자연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내가 혼자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수퍼히어로가 되고 싶어 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버림받은 아이였다.  부모가 모두 관심을 두지 않은 외톨이 아이였다.  사랑에 대한 갈망이 독립을 꿈꾸던 17세 소녀에게 주는 시련은 혹독했다.  그녀가 버림받은 외톨이를 그렇게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도 같은 길을 걷게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후회, 극복할 수 없는 좌절이 그녀를 철저하게 짓눌렀다.

 

111326

Photo / 삐삐와 친구 토미와 아니카.  난 스스로 돌본다는 유명한 말을 한다.  출판사 시공주니어

 

또다시 찾아온 사랑에 딸 카렌을 얻고, 마치 다시 삶을 얻은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속죄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아픈 날이 많아진 딸.  막상 해줄 수 있는 건 잠시 아픔을 덜어줄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녀가 딸을 위해 들려주었다고 알려진 삐삐의 이야기는 전부 그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야기다.  다시 돌아가고픈 9세의 그 천진난만한 시절을 배경으로 힘세고, 엉뚱하고, 혼자서도 뭐든 하는 슈퍼 어린이가 그녀가 되고픈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에서, 그 당시 유럽에서 아주 흔하던 문화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도 일부 그런 문화가 있지만, 그 배경에선 아주 흔하던 습관들 같은 것이다.  말을 타고 다닌다던지 누구나 좋아하는 사냥 또 작은 보트로 낚시나 여행을 간다던지 여름 별장 같은 것들은 북유럽에서 아주 흔하게 있던 생활 습관이었다.  그 흔한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삐삐를 통해서 다시 느끼는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다.

 

111158

111247

Photo / 세상에서 가장 힘센 소녀 삐삐에서 발췌, 출판사 시공주니어

 

삐삐는 말괄량이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더하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건 기본이고, 학교도 안 가고, 장난꾸러기에다가 어른들을 혼내고 호기심에 담배도 숨어 핀다.  그런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건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 약자가 사람이던 동물이던 또는 식물이던 상관없다.  이유 없이 약한 이웃을 괴롭히면 참지 못하고 혼을 낸다.  숨긴 황금으로 큰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힘센 사람들을 번쩍 들어 던지기도 한다.  내가 다시 그 나이로 갈수 있다면, 난 이런 수퍼 어린이였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 삐삐를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데 정말로 원하던 건 삐삐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가난하고 배고프지만 부모의 사랑 안에서 같이 사는 가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삐삐는 글을 읽는 책이다.  주인공들이 나누는 글을 먼저 읽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오색찬란하게 칠해진, 마치 팝아트에 영감을 주었을 것 같은 그림을 보고, 잠시 생각해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확신한다.  삐삐의 이야기를 읽는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올 것이다.  삐삐는 아스트리드의 한 주인공 이름이다.  그래서 스웨덴에선 아스트리드를 그리며 세운 기념들이 많다.  스톡홀름 시내의 율고덴 (Djurgården) 섬에 위치한 유니바켄 (Junibacken)과 남쪽의 작은 도시 비메르뷔 (Vimmerby)에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 (Astrid Lindgrens Värld)다.

 

Astrid_Lindgrens_World_Entrance

Photo from Wikipedia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 입구

 

Astrid_Lindgrens_Värld,_neue_Villa_Kunterbunt

Photo from Wikipedia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 쿤터분트 자택

 

Lottas_hus_-_Astrid_Lindgrens_Värld

Photo from Wikipedia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 로따의 집

 

내가 느낀 점을 두 곳에 관한 글에서 발췌했다.  “두 곳을 모두 찾아갔는데, 스톨홀름 시내의 유니바켄에 가기 전에는 잘 꾸며진 놀이동산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도 역시 틀에 박힌 재미없는 잣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함께 다시 동심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담한 크기의 마을이 어른들에게는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꼭 맞춰진 세상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진 세상은 비메르뷔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월드에 가면 더 넓게 펼쳐진다.  모든 것이 작은 크기라 아이들만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건물들을 보려고 나는 담장 너머로 겨우겨우 얼굴을 들이밀고 허리를 구부렸다.  어른들의 사이즈에 맞춰졌던 불편한 세상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그곳에서 진정한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또 다른 한편에는 커다란 거인의 집이 있다.  린드그렌의 단편집 “은 사이먼의 여행 (Nils Karlsson Pyssling flyttar in)”에 맞춰 그 주인공들처럼 거인의 나라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곳 역시 잘난 척하던 어른들에게는 버거운 곳이다.  오히려 익숙지 않은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거인의 커다란 가구들을 신나게 오르내린다.  세상의 기준은 언제나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놀이터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마음 편히 움직이는 곳은 자연이다.  넓은 풀밭 위에서 여러 가지 작고 커다란 세상을 구경하고 나온 가족들은 하나가 되어 뛰어논다.  삐삐 복장으로 맞이하는 직원들과 함께 진정한 말괄량이가 되어 각자의 느낌 그대로 즐길 수 있다.  결국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편안히 즐기고 행복할 수 있는 진정한 맞춤형 무대는 자연이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삐삐의 이상한 모습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이유가 자연에서 뛰어놀며 이해되기 시작했다.”

 

Dalagatan_apartment_Jann_Lipka_imagebank.sweden.se

Photo by Jann Lipka / imagebank.sweden.se / 아스트리드의 Dalagatan 아파트

 

그러나 무엇보다 아스트리드의 기념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어워드다.  이 문학상은 그녀를 기리는 스웨덴 정부가 제정했으며, 안데르센 문학상과 더불어 아동 문학의 최고 영예로 꼽힌다.  이번에는 한국의 백희나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스트리드의 삐삐 시리즈는 현대의 눈으로 판단하면 오류가 심하다.  발표할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겠지만, 특히 빠르고 바쁜 현대 사회에서 주인공들을 모두 같은 시대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히 무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한 이야기마다 그 속에 숨은 배경을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다면 마치 아동 심리의 진리에 다가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삐삐의 대사 한 마디는 그냥 툭 던지는 소리가 아니다.  또 한편으로 열 컷 이내로 그려진 한 에피소드가 마치 한 주제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지금 얼마나 많은 고민과 사회적 고통이 많은 시기인가.  또 누구나 교육과 앞으로의 미래에 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고민들, 심지어 고통으로까지 다가오는 생각들은 시간을 넘어 늘 존재했던 것임을 안다면, 그 주제에 대한 변형만이 있었을 뿐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고 해도 옳을 정도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생각할 좋은 주제이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보고 넘기는 책을 넘어, 다시 물음을 던지는 소재로도 충분히 이용될듯하다.

이번에 시공 주니어에서 출판한 삐삐 시리즈는 그러나, 한가지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남는다.  크기를 조금 줄여 휴대할 수 있도록 했었다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너무 삐삐를 좋아하고, 문학을 넘어 예술로까지 여기는 애정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책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다시 사람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읽지만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삐삐 롱스타킹”.  이것이 그동안 백 년에 가까운 인기의 비결이고, 전 세계에서 공감 받은 이유일 것이다.  설마 그것 때문이 아니라면 이렇게 긴 이름이 사랑스럽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윈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 (Pippilotta Viktualia Rullgardina Krusmynta Efraimsdotter Långstrump, Pippilotta Delicatessa Windowshade Mackrelmint Ephraim’s Daughter Longstocking)

 

by Luke

You may also like
북유럽 디자인과 예술 이야기 프로젝트, 자연, “자유롭게 자연에서 뛰노는 말괄량이 삐삐”
말괄량이 삐삐의 나라, 북유럽 스웨덴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