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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말하는 북유럽 행복 지수, 2017년 노르웨이는 가장 행복한 나라

Photo by CH / Visitnorway.com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닌 30여 년 전의 한국 노동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들의 바람은 21세기 선진 10개국이라는 대한민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젠 어디가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나, 왜 한국은 행복하지 못한가 등과 같은 이야기를 하도 해서 지쳤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았는데, 돈 좀 벌면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좀 벌고 보니 그게 아닌 것이다.  갈 길이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고, 좀 방향도 틀어진 것 같이 보인다.  한국뿐이라면 그저 그러려니 하겠는데, 한국보다 한참 앞선 일본도 그 꼴이 걸 보니 아시아의 의식구조는, 또 그렇게 콧대 높게 내세우던 찬란한 문화는 우물 속 반짝이는 조약돌이 아니었나 싶다.

UN 산하 여러 기관 중 각국의 삶과 풍요, 인간의 행복을 연구하는 기관이 있다.  2012년부터 World Happiness Report, 세계 행복 보고서라는 조사 결과를 매년 발표한다.  올해는 아주 약간 변화가 있었다.  항상 초 행복국가를 차지하던 덴마크를 누르고 노르웨이가 최상위 행복 지수를 기록했다.  덴마크가 두 번째, 그 밑으로 다들 아시는 순서… 그리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코스타리카 12위, 아시아 국가로는 싱가포르 26위, 대만 33위, 말레이시아 42위, 러시아 49위, 일본 51위, 한국 56위, 그리고 자칭 대국 중국이 79위다.

링크 참조

http://worldhappiness.report/ed/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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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외에도 여러 번 행복지수에 관해 이야기를 했으니 코스타리카가 오랫동안 행복지수 상위권을 지키는 이유나, 왜 북유럽 국가들이 가장 행복한 것인지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이번에는 해외에서 살펴본 이유와 내 이유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가디언지나 다른 여러 언론에서는 또 항상 그렇듯이 왜 노르웨이가 행복한가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 이유는 국가가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있는 부국이고, 날씨가 좋지 않고, 그들은 무엇이든 함께하려는 공동체 의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국가의 복지 시스템으로 인해 앞날의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들고 있다.  날씨가 좋지 않다는 상대적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다.  가디언에서는 좀 다른 이유를 들었다.  덴마크의 Hygge, 휘께 문화와 노르웨이의 Hytta, 히따를 들었다.  휘께는 한국의 마실이다.  여럿이 한 곳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 장소는 집, 공원 벤치, 자동차 안, 모임 장소 등 편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면 상관없다.  히따는 노르웨이의 캐빈이다.  별장이다.  한국식이거나 미국식은 아니고 시골 외진 곳의 작은 오두막을 말한다.  길도, 수도나 전기도 없을 수 있는 문명과 동떨어진 장소다.  이곳에서 노르웨이인이나 북유럽 사람들은 휴식을 취한다.  그들이 누구나 말하는 여름 별장은 이곳이고 한 두주, 심지어 한두 달 지내는 일도 흔하다.  도시의 일이나 복잡함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자연의 일부로 휴식을 취하는 문화를 행복의 상승 요인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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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지적이다.  영국인들도 유럽의 상식을 공유하니까 상당히 북유럽을 잘 이해한다.  그럼에도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11위의 이스라엘이나 12위의 코스타리카는 그들 나름대로 휘께나 히따의 문화가 있다는 것인가?  한국도 마실 문화가 수백 년 동안 있고, 철마다 놀러 가는 사람도 많은데 왜 다른 결과가 나올까?  자본주의의 눈으로 돈을 집어낸 건 당연하다.  그 외 유럽의 문화로 좀 다른 것들을 발견한 것도 좋은데, 그와 같이 시행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브루나이의 복지는 개인에게서 나온다.  국왕이 새해에 축하금으로 수백만 원을 주며, 출산, 교육, 집, 심지어 유학이나 해외 사업도 지원한다.  각종 세금이나 물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렴하고 날씨마저 좋다.  이스라엘의 사회 시스템이나 코스타리카의 환경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의 좋은 환경에서도 국민의 행복은 평균 수준이다.

내가 여러 경험을 하면서 느낀 여러 가지 중 가장 사랑하는 하나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단순하다.  어느 책이건 다루지 않는 것이 없고, 심지어 불교는 수행 방법 중 하나다.  기독교도 다르지 않아서 진심을 다하라고 말한다.  요즘 알려진 우주의 기운마저 도와준다고 할 정도다.  답은 북유럽 사람들이 더 오래, 더 깊이, 더 많이 인생과 삶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부인하고 싶어도, 한국인의 우수한 지적 능력으로 그걸 반대하고 싶어도 북유럽 사람들의 인생관은 확고하다.  그 인생관은 수천 년이 반복되며, 핵심이 흐려지지 않은 고도의 철학이고, 작게는 하루하루의 생활, 유대인의 탈무드나 떠들기 좋아했던 중국의 고서들을 종잇장으로 만드는 실천 사고이다.  모든 사고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디자인의 사조도 현실에서 나타나야 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본연의 삶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의 문화에서 얼마나 많은 인생에 대한 고민을 했는지 나에게 묻는다면 그건 그저 고민이고, 계획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현재 동시간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문화에서의 고민은 계획이다.  어떻게 좋은 성적을 올리고, 돈을 얼마나 더 벌고, 내 장래 인생을 위해서 얼마의 투자를 하고, 부모님의 미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고민은 계획이고 스케줄이다.  방학 직후 아이들이 거대하게 그려 붙이는 동그라미 계획표다.  욕심이다.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기 바라는 사람은 심지어 나도 아니다.  믿을 수 없으니까.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결과는 없어야 하는 걸 아니까 그 계획표는 그저 계획으로 끝난다.  한둘 그 계획을 잘 실천했어도 그뿐이다.  얼마나 삶에 도움을 주었나?  그걸로 얼마나 삶과 방학이 바뀌었나?

실제 인생에서 한순간의 점수, 실수, 성취, 평판 등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큰 꿈이 기다리고 있는가 하는 것들은 모두 계획이다.  나는 누구인지 알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조상과 내 나라, 내 문화가 어떤 가치로 시간을 보내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앞으로, 자꾸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자꾸 앞으로 나간다.  휘께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남들과의 대화가 “철학이 삶이 되는 수준”이 될 때도 있는 시간이다.  히따는 고독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싫어하는 외로움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즐기는 방법을 찾고 다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히따는 귀향 살이다.  일부러 고생길에 나서는 오지 탐험과 같다.  한국도 있다.  오지 탐험과 캠핑 등의 트렌드가 있다.  그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가?  결국 다시 자기 현실 얘기다.  앞으로의 삶, 부동산, 집, 자동차, 누구 돈 번 얘기, 망한 얘기… 그러면서 난 안 그래야겠다 다짐하는 그 수준 아닌가?

인간은 발전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지만 굳이 발전할 필요가 없다.  인간도 목적이 있다.  인류를 구하고,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업적을 쌓는다는 화려한 미사여구는 바람이다.  욕심이다.  순수한 나를 찾는 것.  그래서 그 순수한 나의 목적을 스스로 깨닫는 것, 그 깨달음대로 삶을 사는 것, 그러면서 매 순간을 즐기며 사는 것.  이것이 인간의 이유다.  이것이 자유고, 인간성이다.  그 바탕에 내 것이나 학습, 좋아하는 것 같은 길이 나뉘고 그 길을 걷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다가도 다시 언제나 내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자유고, 사회 경제적인 여유로 그 환경을 도와줄 수 있는 뒷받침이 “복지 시스템”이라는 말로 북유럽에는 있다.  이것은 참 부럽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찬란하고 화려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인간의 기본이 되지 못했으면 그저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학력과 지적 능력에 상관없이 생각하는 문화가 일상의 아주 밑바닥에 자리 잡은 것이 북유럽 사람들을 “행복”이라는 가치로 깨닫게 해준다.  행복은 아주 작은 감성적 가치다.  내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저절로 나오는 감각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잡아야 하는 가치다.  게으르다.  원초적인 문화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너무 관대한 이기적 동물성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3-40위의 행복 순위에 들지도 못한 문화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것도 생각하면 잘못은 없다.  그저 다른 것이다.  행복을 모르는 문화가 그저 그렇게 살아만 간다면 그건 또 그들만의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행복을 갈구하며, 왜 우리만 이런가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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