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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창업이 한국에서 가능할까?

Photo by Susanne Walström, imagebank.sweden.se

2006년 무렵이니까 좀 오래된 이야기다.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인천공항도 처음이었고 바뀐 사회 분위기도 낯설었다.  인천공항의 도착 통로와 입국심사, 세관, 보안 구역 등을 거치면서 든 처음의 생각은 서비스를 하는 인력들이 참 젊다는 것이었다.  중장년들은 다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는지는 몰라도 40대는 고사하고, 과장하면 30대들도 많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러 한국에 왔을 때도 사회는 여전히 젊게 보였다.  강남의 비즈니스 중심지, 주민센터, 교육 시설, 백화점을 가 보아도 근무하는 인력들도 그렇고 고객들마저 참 젊게 보이는 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인들이 좀 젊게 보이는 착시도 있었고, 실제 일을 하는 서비스직들은 나이도 어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이유는 넘치는 고급인력과 유행, 조기 은퇴, 사고의 노쇠화 등이 있었다.  한국의 문화는 그 나이에 맞는 일을 하라는 사고가 있다.  공부도 때가 있고, 나잇값을 해야 하는 체면치레가 있다.  스스로 벽을 만들어 그 안에 가두는 꼴이다.

창업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중요하다.  씨앗의 발아 과정같이 기업과 일자리, 소득의 근원이다.  과거 천하다고 구박한 역사가 다시 바뀌고 현재 아무도 상업적 활동을 기피하는 현상은 없다.(?)  적다가 정답이겠지만…  눈을 조금 밖으로 돌리면, 창업을 국가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들이 있다.  실리콘 밸리의 미국이 그랬고, 노키아와 IT 기술의 북유럽이 그랬다.  그중에 이스라엘과 인도도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우린 잘 인식 안 하지만 한국도 무척 매력적인 창업 허브국가다.  인도와 이스라엘은 정보가 없었는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창업 유니콘의 수로만 보면 빠질 수 없는 창업 문화이고, 전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도전의식이 있다고 한다.  북유럽과 미국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창업으로 성공이란 이름을 듣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국민 누구나 새로운 생각을 하고, 일부는 행동한다는 점이다.

가수 싸이가 강남 스타일에서 스타가 된 후 다음 곡을 고민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전작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얼마나 큰 부담이었던지 몇 년간 강남에도 안 갔었다고 한다.  한국 창업의 실태는 아직 뜬구름 잡는 허세가 많다.  기술이나 유행, 서비스의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한 창업도 많지만, 자본주의의 열매만을 노린 어쩔 수 없는 창업과 창업의 시작이 마치 큰 성공과 연결되는듯한 기대가 아직 많다.  이 어린이 같은 사고는 한국의 의식과 바로 연결된다.  왜 창업을 하는가에 대한 답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자본이란 이익이 없다면, 이미 부자라면 창업을 하겠는가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을 것이다이다.  중년과 노년의 창업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단순 소비재나 서비스에 국한된다.  그러면서 내용과 기술보다 규모와 자본에 더 관심을 갖는다.  위의 이야기는 창업 관련 수많은 조사와 일반인을 상대로 한 의식의 상태다.  20대에서 자신의 일을 창업으로 하고 싶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은 중년, 장년, 노년의 경우도 같다.  아직 창업은 자기의 돈이 들어가고,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으며, 실패자라는 오명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던 일보다 더욱 값있는 창업이어야 하고, 창업자의 주도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한국은 아직 창업을 긍정적인 직업으로 보고 있지 않으며, 자신의 길이 그 일밖에 없을 경우 택하는 차선의 하나이다.  또 수익이 창업의 모든 것임으로 단순한 계산에 의해 정확한 수익을 예측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좋고, 자신의 노동이 바로 돈으로 연결되는 수익구조를 선호한다.  중장년과 노인은 창업을 보는 사고 수준이 시골 장터의 그것과 다르지 않고, 기술 창업과 혁신이란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이끌고 가르쳐주는 담당 기관이나 학교의 교직자들도 창업과 혁신 교육에 관해 전혀 배운 바와 들어본 바가 없으며, 그렇기에 전해줄 정보도 멘토도 존재할 수 없다.  창업을 리딩 하는 인큐베이팅은 고사하고, 엑셀러레이팅, 캐피탈, 펀딩 등의 기관 등도 대부분 “은행의 대출계” 수준을 넘지 않으며, 아주 일부 해외의 물을 먹은 창업 교육 인력들은 어깨너머의 지식을 무척 맹신한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쯤 바뀐 트렌드일 것이다.

창업은 무척 중요하다.  이유는 청년층의 일부를 도전적인 기업가로 기르기 위해서다.  20대 재벌이 탄생하고 그로 인한 사회의 빠른 사고가 국가적 문화적으로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만 그렇지 않고, 사고의 수준이 젊은 감각으로 인해 한국이 바뀌길 바라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노인들의 재 소득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30%를 넘어갈 한국의 노인 인구를 나머지 사람의 세금으로 먹여살릴 것인가.  아니면 그 자식들이 부모를 봉양하는 효도 잔치를 국가적으로 기획하는가.  한국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노인은 존경과 부양의 대상이 아니다.  나이만을 이유로 존경을 받는 문화를 아직 그린다면 빨리 잠에서 깨기 바란다.  노인들은 중장년과 동등하고 같이 협력하며 살아가야 할 개인일 뿐이다.  모든 일이 뛰어다니고 무거운 것들만 들어야 하는가.  노인들은, 특히 정상적인 생활을 마친 노인들은 20대가 상상치도 못할 경험과 깊은 사고가 있다.  그러나 그 경험도 나잇값과 연결하면 갑질이 되고 훈장질이 된다.  왜냐하면 그 노인의 나이에선 그러는 거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바르지 않은 저급 교육을 스스로 편하기에 믿고 지내는 거다.

한국의 청년들이 생각하는 창업의 의미는 북유럽과 다르다.  그 세월이 지나고 지난다고 노인이 되어서 갑자기 혁신적이고, 평등하게 바뀔 수 없다.  세 살 버릇은 어디 안 간다.  지금의 한국 노인들은 세 살 버릇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거다.  그들에게 평등하고 새로운 창업을 하라는 거 자체가 혁명이다.  그래서 중장년에게 주목한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의 노인들은 나이와 상관없는 능력과 경험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30%를 넘는 노인인구 중 10% 정도는 식당과 치킨집 같은 창업이 아닌, 다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이 창피하지 않고, 망한 것에 책임이 없고, 성공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큰 도움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왜 북유럽의 노인들은 아직도 창업을 하려고 할까.  왜 나이가 있으면 젊은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없을까에 대한 답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20대의 틀에 들어가지 못하면 사회 부적응자로 몰아붙인다.  30대의 틀에는 실패자가 더 들어간다.  이렇게 쌓인 틀들이 모이고 모여 무척 아름다운 틀을 노인들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내가 만난 한국의 어느 노인 재력가들도 우리가 만든 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소위 나잇값은 하고들 있었지만 다른 20대와 다른 장년들과 공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자본과 지식이 노인의 의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 천직으로 알고 지낸 일을 묵묵히 마친 노인들의 사고 수준이 더욱 혁신적이었다.

북유럽의 노인들이 친구 같은 사고를 스스로 하듯이, 보다 더 넓고 사회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듯이, 내가 하는 일이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때문이란 걸 믿듯이, 지금의 중장년은 생각해야 한다.  노인의 과거가 현재 젊은이들이다.  반대로 현재의 중장년이 미래의 노인의 의식수준을 보여준다.  지금 창업과 사회의 책임을 비웃으며, 미래의 창업자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이 무한정인 노인 인구에게 생활비의 수십 배를 지불해주는 국가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민 모두 다 게을러서 아무 일도 안 하며 사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려주고도 싶다.  현재의 중장년이 노인의 연령에 들어갈 무렵, 세계 역시 노인 생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생산인구 감소로 고통받을 것은 한국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시대 무작정 혜택받으며 게으른 한국의 노인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그다음 세대는 없을 것이다.  가진 배터리의 용량을 한꺼번에 다 써버리는 것과 같다.  노인이 사고하고 도전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는 꿈이 아니다.  지금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 문화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상이다.  청년의 양팔에 매달린 노인을 그린 한국의 어느 풍자만화가 생각난다.  어쩌면, 지금의 한국 중장년이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면 청년의 양발을 받들고 서있는 두 노인을 그린 한국이 될 수도 있겠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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