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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 뭉크(Edvard Munch)

The Scream, 절규 (1893) by Edvard Munch – WebMuseum at ibiblioPage / Wikimedia Commons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여러 가지로 응용되어 알려진 그의 작품, “절규”를 통해 뭉크(1863-1944)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북유럽의 노르웨이가 나은 세계적 표현주의 화가라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우울하고 비관적인 그의 삶과 여자,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들은 현재 우리가 느끼는 북유럽에 대한 환상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활동한 20세기 초의 북유럽은 세계열강들의 싸움 속에 가난과 함께 살아가던 암울했던 시간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를 거칠 때까지 유럽과 세계 주요 강대국들 속에 북유럽의 예술도 그들을 따르고 흉내 내기에도 벅차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자연의 악조건과 계속되는 전쟁과 가난 가운데 북유럽은 그들만의 모습으로 살아갈 미래와 신념을 찾기 시작했고, 예술이나 디자인에서도 북유럽만의 색깔과 방향을 찾아간 시기이기도 하다. 그 격동기 한가운데에 현대 미술 전체에 영향을 끼친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도 있었다.

석양의 빨간 물이 온 세상을 휘감고 있는 그의 작품, “절규”는 사실 그시대 북유럽의 슬픔과 외로움도 함께 담고 있는 듯하다. 19세기 말 그는 노르웨이의 뢰텐, Løten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군의관인 아버지와 많은 형제들이 함께 하는 편안한 가정 같았지만,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누이를 잃게 되면서 그는 죽음과 이별에 대한 주제를 온몸으로 떠안게 된다. 신앙에서 그릇된 광기를 갖게 된 아버지는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원하는 미술에 대한 꿈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슬로로 이사한 후에도 뭉크의 가족은 질병과 가난에 모두가 고통을 겪었고, 뭉크 자신은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 속에 오슬로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반대하던 예술에 대한 열정에 뛰어들었다.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정해진 교육과정을 통한 예술가로서의 길이 아닌 고갱, 반 고흐 등의 작품을 통한 영감으로 그의 예술적 깊이를 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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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vard Munch (1921) / Wikimedia.com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가정을 이끌게 된 뭉크에게 그림은 수입을 벌어드리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사실 그 당시에 작품들을 통해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았지만, 긍정적인 관심보다는 전시 때마다 비판과 논쟁을 더 많이 받았던 화가였다. 1892년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그의 전시회는 8일 만에 전시회의 막을 내리는 Munch Affair란 스캔들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오히려 뭉크는 이 일로 유명세를 더 얻게 되고 작품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게 된다. 80년의 생애 동안 그는 항상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내면세계의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그려왔다. 죽음으로 이별했던 가족들로 인해, 광적으로 집착하던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그의 배신감과 사랑에 대한 절망 만을 안겨주었던 여인들과의 관계들이 그의 작품들을 채워 나갔다.

19세기 후반부터 30여 년간 그의 주요 명작들을 탄생시켰던 그의 모티브이자, 연작물 시리즈는 “Frieze of Life — A Poem about Life, Love and Death (삶의 거친 보푸라기- 삶의 시, 사랑 그리고 죽음)”였다. 전 세계인이 알아보는 “절규”를 비롯 “마돈나” “흡혈귀” 등의 대표작들이 계속 이어져 발표되었다. 다시 노르웨이 오슬로로 돌아온 그에게 결혼을 갈구했던 여인 툴라 라르센(Tulla Larsen)에게 총탄을 맞게 된 그는 더욱 사랑과 여성에 대한 경멸과 증오가 심해진다. 결국 우울증과 환각 증세의 정신병으로 그는 고통을 겪었다가 수개월의 요양치료 이후 그의 작품은 밝은 색조와 시선을 가지고 풍경이란 주제로 옮겨지고 마무리된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노르웨이 에켈리(Ekely) 지역의 평화로운 북유럽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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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mpire, 흡혈귀 (1893) by Edvard Munch – WebMuseum at ibiblioPage / Wikimedia Commons

 

사람들은 쉽게 뭉크를 ‘절망’의 화가라고 부르지만, 그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고 느끼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그는 늘 삶의 희망과 생명을 갈구했다고 말한다. 후진적인 북유럽 노르웨이를 탈피하고자 하였던 뭉크지만, 모방이 아닌 그만의 표현방식으로 찾고자 하였다. 정치적이길 원하지 않은 그에게 나치 정권은 협력하기를 계속 원했지만, 그는 끝까지 협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일 안에서 나치를 피해 탈출해야 하는 사람들을 돕기까지 하였다. 그의 작품을 칭송하고 끝없이 구애하던 나치 정권은 결국 그의 작품을 탄압하기도 한다. 뭉크의 삶은 어릴 적부터 순탄하지 않았고, 그를 둘러싼 북유럽의 시대적 상황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현재 북유럽의 발전된 모습처럼 자신만의 색깔과 삶의 방식을 찾아나갔고, 그 어떤 유리한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가고 굴복하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북유럽 노르웨이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사랑했던 독일의 정치가이자 작가, Walther Rathenau가 한 말이 내게 인상적으로 남았다. “정형, 투명함, 우아함, 온전함, 그리고 리얼리즘에 대한 뭉크의 냉혹한 경멸심을 가지고, 그는 가장 미묘하게 영혼을 볼 수 있는 재능의 직관적인 힘으로 작품을 그린다. (With ruthless contempt for form, clarity, elegance, wholeness, and realism, he paints with intuitive strength of talent the most subtle visions of the soul.)”

에드바르트 뭉크 공식 사이트 : http://www.edvardmunch.org/

 

 

By Ang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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