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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금 있게 해준 스웨덴의 솔렌투나에 관한 기사

Photo by Tom Meraw

뉴스를 보다가 솔렌투나의 사진이라는 글이 들어왔다.  자전거의 신기술을 주로 소개하는 Bikerumor라는 블로그인데 스웨덴의 한 독자가 사진을 기고했다.  눈에 확 익은 지명과 모습에 잠시나마 가슴이 쿵쾅거렸었다.

“Starting to melt but lots of ice still left on the shady side of the inlet. Norrviken, Sollentuna, on the way to see Mormor (grandma) in Täby from Stockholm, Sweden.”

“눈이 녹기 시작했지만 그늘진 곳은 아직 얼음이다.  솔렌투나 노르빅켄에서, 스톡홀름에서 태비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중에.”

그 밑에는 안델스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Anders Larsson March 12, 2019 at 12:40 pm

It’s Edsviken, just south of Helenelund. Not Norrviken. Still a nice detour from the main bikeway for those days you’re not in a hurry

“거기는 헬레네 룬드 남쪽인 잇즈비켄입니다.  노르빅켄이 아니구요.  어찌 되었든 주 도로를 벗어난 아주 멋있는 우회길입니다.  느긋하게 즐기기엔 아주 좋죠.”

솔렌투나를 말하면서 내 책에서 그곳에 관해 쓴 구절을 다시 적는다.

“내가 살던 곳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솔렌투나, Sollentuna라는 도시다.  용광로를 가리키는 투나, Tuna라는 이름으로 과거 철을 생산하던 곳이란 걸 알 수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드넓은 침엽수의 바다로 이어지는 광역 도시권의 끝자락쯤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살던 동네에서 걸어나가 작은 숲길로 들어서면, 문명과 차단된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곤 했다. 휴대전화의 신호가 겨우 잡히던 그 숲에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 썩은 나무뿌리, 수년 동안 치우지 않아 쌓이고 쌓인 낙엽들, 그 속의 작은 생명들. 작은 세계를 무례하게 방문하며 그 속의 생명들을 참 귀찮게 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느끼던 불안감은 편안함으로 다가왔고, 어느새 휴대전화조차 가지고 가지 않는 진정한 쉼터가 되었다. 그 숲을 지나 호수며 절벽이며 침엽수의 땅끝을 걸을 때면 항상 처음 방문하던 작은 동네의 숲속을 생각하곤 했다.”

잇즈비켄의 숲속은 참 낯설었다.  잘 정돈된 보도블럭과 각 잡힌 잔디밭에 익숙한 나는 썩은 나무뿌리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벌레들을 보고 기겁했고, 포비아가 있는 파충류를 상상하기도 했다.  축축한 흙냄새 속에 무언가 썩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 깨끗한 내 운동화에 달라붙는 진흙과 낙엽들이 무척 싫었다.  처음에 숲에서 돌아온 날에는 신발을 빨고 다신 숲에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서너달이 지나고 다시 다른 꽃이 피었음을 느낄 때쯤, 난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숲을 찾았다.  아이들은 자연을 닮았다.  무슨 위험이나 더러움도 상관없이 숲을 헤치며 뛰놀았다.  캘리포니아의 사막화된 숲에서 전갈과 맹독을 가진 동물들의 걱정은 추운 기후 때문에 사라졌다지만 난 아이들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잘 몰랐다.  난 오늘날의 부천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는 부평군 소사읍이란 서울 외곽의 시골이었는데, 수도권이란 말도, 지하철도 생기기 전이었다.  저수지나 냇가에서 수영을 하고, 호미를 가지고 칡을 캐러 다니고, 깨밭에서 쐐기에 쏘여가며 숨바꼭질을 했다.  근처 미군 보병 보급부대에서 주민 행사를 여는 것을 봤고, 미군들과 점심을 같이 먹은 적도 많았다.  이런 지난 기억들은 내가 잇즈비켄의 숲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무심히 기다리며 한 나무토막 위에 걸터앉아 떠오른 기억들이다.  난 시골에서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가진 놀이 기억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이를 먹고, 깔끔함을 부러워하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 좋아 보이는 서울 촌놈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미국 문화에 나를 빠트리고 너무나 당연히, 내가 가진 모든 환경이 다 정답이며 영원할 줄 알면서 살았다.  내가 가진 능력이면 환경마저 옮겨 올줄 알았다.  그러면서 지난 내 기억이, 그토록 아름답던 내 추억이 그냥 잊어야 되는 걸로 나 자신을 만들었다.

삶에 의미를 찾던 그 시절,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다시 나의 인생과 삶을 정리하고 다른 방향에 그렇게 불편하지 않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시 자연이다.  나는 그 숲에서 다시 어린 나를 보았고, 편안함을 느꼈다.  터지지도 않던 핸드폰이 자연스레 숲의 산책에선 멀어졌다.  그러면서 다시 나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던 그 냄새들, 벌레들의 움직임, 나뭇잎의 썩는 모양들은 매 순간 같음 없는 다름을 보여줬다.  사람은 변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변하는구나 하며 나를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곳이 솔렌투나다.  나의 인생의 사춘기를 그렇게 아름답게 만든 곳이 솔렌투나의 잇즈비켄이다.

숲 옆의 호숫가에 물새들이 보고 싶다.  내 집 뒷동산에, 숲의 끝자락에서 한참 더 올라가는 스키장도 보고 싶다.  다음 출장길엔 꼭 다시 그 숲에서 한참을 보내야 할 것 같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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