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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을 위한 북유럽인들의 약속, 존중, 믿음, 실천

공익을 위해 함께 행동하는 자연스러운 실천

얼마 전 처음으로 아이들과 스웨덴의 야외 스케이트장을 찾았다. 올겨울은 이상 기온으로 눈대신 비가 계속 오는 날씨지만 곳곳의 야외 링크는 어김없이 문을 열었다. 스케이트를 난생처음으로 타는 아이들이 탈수 있는 곳은 오직 시내 중심가의, 스케이트 대여가 가능한 Kungsträdgården 스케이트장 뿐이었다. 조그만 대여소 하나와 곳곳의 작은 방갈로가 전부인 그곳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고 아이들이 처음으로 타기에 위험하지 않았다. 대부분 북유럽인들답게 익숙한 솜씨로 서로 조심해가며 즐기는 환경이라 초보자들과의 충돌은 찾을 수 없었다.

기분 좋고 평화롭게 아이들의 첫 스케이팅 추억을 만들며,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스케이트장의 입장료가 없었다. 그건 모두가 이용하는 공원이니 당연하다고 느껴도, 내가 빌려온 아이들과 어른들의 스케이트는 어떻게 반납되고 추가요금을 내야 되나 의문이 생겼다. 시간당 얼마씩 내는 요금제였지만, 빌려줄 때 아무 시간 확인도 없었고, 나의 담보나 신분 정보를 맡겨두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절차는 간단했고, 사람들은 설명문이 쓰인 대로, 대여소의 직원이 알려주는 대로 차례대로 빌렸다. 심지어 아이들이 꼭 착용해야 하는 헬멧은 무상으로 빌려주었다. 사용한 사람들은 다시 가서 반납하고, 각자 한 시간보다 얼마나 더 사용했는지 확인하고 추가요금을 지불했다. 가까운 곳에 간단한 음료와 스낵을 팔지만, 먹거리를 들고 타는 사람, 쓰레기를 링크 위에 떨어뜨리는 사람, 일반 신발로 들어오는 사람 등은 찾을 수 없었다. 아늑하게 쉴수 있는 방갈로 건물이 곳곳에 있었지만, 그것을 마치 개인 소유인양 점거하고 짐을 펼쳐 놓는 사람도 없었다. “- 하지 마세요” 이런 문구가 여기저기 험상궂게 붙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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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gsträdgården 스케이트장의 스케이트 대여소

소위 머리를 잘 쓴다고 생각하면,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바보로 보인다. 나도 이곳에 온 이후로, 나도 모르게 “그럼 이걸 이렇게 다르게 해도 되는 거 아니야?”하고 자꾸 정해진 Rule 이외의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요행”이란 것을, 남보다 다른 행동을 큰 방해 없이 무리 없이 할 수 있다면 그런 판단이 더 똑똑한 사람이라는 마음이 내 한구석에도 오랜 세월 박혀있는 것을, 북유럽의 “바보”같은 세상에 오니 더욱 깨닫게 되었다. 정해진 대로 꼭 지켜나가는 사회가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했고, 융통성도 없고 효율적이지 않은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그건 모두 오로지 내 입장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얻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다음으로 내가 이해의 사고를 넓히며 스스로 납득시킨 것은 “양보”였다.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남을 위해 나를 조금 희생시키는 마음이 이곳 사람들은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것도 착각이었다. 정해진 룰을 지킨다는 것은 스웨덴에서 희생이나 양보처럼 “고민”이나 “갈등”끝의 결심처럼 힘든 행동들이 아니었다. “공익”을 함께 얻기 위해 물 흐르듯 당연히 연결되는 서로 간의 고리 같은 거였다. 왜 다르게 하고 싶어 하는지, 왜 룰을 벗어나고 싶은지를 오히려 사회 전체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것은 서로 함께 누리고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만들고 지켜나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교육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Internalization’이라고 들었다. “내면화”이다. 어떤 행동과 동기 등을 주입하고, 맹목적으로 반복,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필요성과 내용을 이해하고 납득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교육적 가치를 중요시한다. 작은 질서 하나도, 왜 필요한지, 왜 그렇게 약속하고 지켜야 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동안 사회 속의 약속과 실천이 “억지로” 따라가는 동기부여 없는, 내면화되지 못한 행동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기에 항상 “그 밖의 다른 생각”에 몰두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02  Internalization을 통한 공익을 위한 질서

스웨덴에서는 스케이트 대여소 뿐 아니라 곳곳에서 의아한 약속과 실천은 많이 보게 된다. 새벽 일찍 골프장에서는 자율 요금 계산대를 이용하고 티오프를 한다. 직원의 근무시간 이외에 손님 혼자 내는 자율 계산대가 가능한 사회이다. 버스 정류소에 누군가 구입한 마켓 봉지 하나를 두고 간걸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도 만지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 혼자 슬쩍 그 안에 든 달걀과 식료품을 관심 갖고 있었다. 박물관 등의 입장 때도 한국 사람 기준에서 “허술한” 곳도 많다. 불법행위를 가려내고 처벌하려면 “허술한 관리”이지만, 모두가 지킨다는 믿음이 있다면 “쉽고 편리하고 비용도 절감되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이민사회인 미국에서는 각 민족들의 행동 특성들이 이미 각각의 꼬리표가 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도 이미 미국에서는 많이 얻었고, 한국 사람들이 모인 곳은 항상 그걸 입증해주는 무대가 돼버린다. 미국에서는 나름 ‘국가대표’라는 마음으로 그런 모습을 버리고 살려고 노력 했던 나도 여전히 공익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부족한 한국인의 모습이 남아 있음을 북유럽에 와서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맘껏 누리는 사회복지혜택이 놀라워 보이고, 한국은 왜 그렇게 안될까 부럽기만 한 북유럽이다. 생활을 시작하면, 그 사회 안에 혜택을 누리기 위해 서로 자연스럽게 존중하고, 모든 약속을 지켜나가는 믿음과 실천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머리가 나빠서 하는 바보짓도 아니고, 억울하게 양보하며 먼저 많이 이득을 보는 사람때문에 배 아파하게 만드는 행동도 아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의심하고, 누군가 더 쉽고 편하게 누리지 않을까 상관하고 걱정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튀어나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바보”가 될 것이다.

by Ang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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