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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그에 따른 남녀의 자세에 관하여

Photo by Miriam Preis / imagebank.sweden.se

남녀가 결혼을 생각할 때는 이제 어느 정도 성숙한 사회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때이다.  사회인은 자신의 의지로서 스스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기이다.  그때 누구나, 비록 독신으로 살 것이라 생각했다 하더라도, 결혼에 관해 생각하곤 한다.  결혼은 그럼 왜 하는 것일까?  그리고 결혼을 생각할 때 남녀가 어떤 상대를 만나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도 생길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이유는 완벽한 삶에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남자든 여자든 혼자서 긴 여생을 보내기에는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굳이 자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독신은 그렇게 효율적이지도 않으며 다른 상대가 자신의 삶에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익이 더 많다.  신이 사람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일생을 통해 나타나는 질병이나 노쇠, 스트레스, 즐거움, 활력 등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서 나는 세대에 따른 남녀의 중요성이나 성별에 따른 문화적 차별을 배제하고 정확한 반과 나머지 반의 결합을 지지한다.  반의 한 성인이 나머지 반을 만나 완전한 하나의 인생을 사는 것으로 결혼을 결론짓고 싶다.  그것에 다른 변수는 비록 모자란 반이 둘 만난다고 해도 완전한 하나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모자란 반은 보다 완벽한 반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그래서 상대를 알아보고, 고르고, 비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완벽한 반이 무엇인지는 각자의 목표와 살아온 생활방식, 지식, 문화, 가풍, 목표, 가치 등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외모에 중점을 둘 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성격이나 마음가짐에 더 의미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치의 차이일 뿐 모두 보다 완벽한 반쪽을 찾는다는 일임에는 동일한 행위이다.

남자는 또 여자는 그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  굳이 신의 창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신체적 구조나 성격, 역사적 관습을 통해서도 그 다름이 나타난다.  이것을 부정하는 일부 사실들은 다 시대적 가치일 뿐 통째로 없어지는 오류는 아니다.  그렇기에 남자가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와 여자의 것이 다르다.  남자는 그 역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책임감이 우선이다.  가정과 그 구성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무를 해야 한다.  그 의무는 재화나 물질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장이나 남자의 의무를 마칠 때도 있고, 때로는 더 험한 상황에서 책임감을 느껴야 할 때도 있다.  사고나 비상 상황으로 그 책임을 다 못하는 것 또한 자신의 책임이고 그것 또한 상대에 대한 책임 결여이다.  마치 내 몸이지만 내 것만이 아닌 것 같이 책임을 지는 책임감이 남자에게 가장 필요하다.

둘째는 공평이다.  공평은 나와 상대 그리고 혹시 있을 자녀에 대한 공평함이다.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가족은 공평하다.  누구나 어떤 가치던지 독점할 권리는 없다.  우리 전, 또는 전전 세대의 흔한 이야기 중 어머니의 희생으로 매일 멋진 옷과 음식을 누리는 가장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다.  혼자 다른 반찬의 독상을 즐긴 가장의 모습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녀들은 언제나 같은 조건과 환경에서 생활하며, 같은 가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평이다.  마지막은 신뢰이다.  그 구성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주어야 한다.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고 어떤 상황에도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지는 상상은 가족이 할 수 없어야 한다.  그렇기에 부부간의 다툼에도 말을 삼가고, 뱉어지는 말이라도 헤어진다는 가정을 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이에 비해 여자는 보살핌, Care가 우선이다.  남자가 책임감을 갖는다면 여자는 그를 보살피고 가족 모두를 나를 대하듯 살펴야 한다.  보살핀다는 말은 필요에 따라 음식이나 세탁을 하는 등의 가사 노동을 의미할 때도 있다.  또 신체적, 사회적 조건으로 보살핌이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바쁜 사회활동 후라도 가정에서 보살필 마음이 있으면 하게 되어있다.  또 아무리 시간이 많고 빈둥거리는 주부라도 하기 싫으면 빛을 내서라도 안 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남자의 책임감이 중요하다면 여자에게는 가족을 보살핀다는 기본이 직접 행하는 가사 활동이다.  그것에 시간이나 양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단 한 시간이라도 엄마와 아내의 보살핌을 진심으로 그 가족 구성원이 느끼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여자의 두 번째 결혼에 관한 자세는 희생이다.  공정한 태도로 인한 남자에게 또 자녀에게 여자는 희생할 의무가 있다.  진정한 여성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희생할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요즘 이런 말을 한다고 무수히 날아오는 비난을 생각하면 어려운 화두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의 시간과 편안함, 낭만, 만족 등의 가치를 모두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더욱 즐겁다는 것을 무수히 목격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 생각한 희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투자였음을 알았다.  오늘날의 희생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그런 가치가 아니다.  아침의 꿀맛 같은 잠 한 토막, 오후의 커피타임, 또는 늦은 귀가를 하는 남편을 위한 기다림 등이 모두 해당된다.  하나하나를 따지며 누가 더 손해임네를 입에 달고 사는 가정이 화목한 것을 난 단 한 번도 보지 못하였고, 작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가정이 문제가 나는 것을 또 듣지 못 했다.  부부간의 마음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서 이런 행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조상들이 생각하는 궁합이란 것이 어떤 의미로 생각과 가치가 서로 맞는 그 점이 아닐까 추측한다.  마지막의 것은 현명함이다.  지식과 지능은 무너질 수 있지만 현명한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역사적 여성상의 표본은 현명한 여자였다.  현명함을 지닌 사람은 나중에 지식과 마음이 넓어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도 잃어버린다.  가족의 위기에서는 아내의 현명함이 중요하고, 그렇지 못한 사례를 우리 모두 수십 개씩 알고 있다.  여자의 현명함은 위대함이고, 그것으로 남편과 사회를 구할 수도 있다.  현명한 지도자의 부인은 그 지도자보다 더욱 훌륭하고 위대하다.  결국 그를 그렇게 만든 것도 그 부인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본래 즉흥적이고 오만하며, 마음이 편협해지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최소한 여자에 비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 아이의 성격이 죽을 때까지 남아있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아직 어머니의 따뜻한 뱃속을 잊지 못해서라는 속설도 있다.  때때로 철이 안 든 것 같은 남편을 지키는 것도, 그 자녀를 그 부부와 같은 사회인으로 기르는 것도 여자의 현명함이 크게 좌우한다.

난 내가 어려운 가치를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조심하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고 생각한다.  좋은, 그러니까 내 가치를 이해하고 기꺼이 동조하는 상대를 만나 같은 궤도를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러기에 각자의 자세를 생각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상대의 재산과 외모에 현혹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by L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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